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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비틀스·코롤라·아이팟…시대를 풍미한 감성코드에 바치는 헌사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골든 슬럼버’로 본 시대의 아이콘들2010년 8월 개봉한 ‘골든 슬럼버(golden slumber)’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골든 슬럼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반미 성향을 가진 젊은 신임 총리가 취임 퍼레이드를 하는 도중 폭탄테러로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에 앞서 현장 부근에선 택배기사인 아오야기가 대학 시절 친구인 모리타와 오랜만에 재회하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친구는 “너는 곧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당할 거야. 도망쳐!”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곧 총리가 탄 차량에 원격조종된 헬기 폭탄이 날아들고 모리타가 탄 차량도 폭발한다. 아오야기는 영문도 모르는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가 암살현장에 있었음을 증언하는 목격자, 헬기 폭탄을 조종하고 있는 아오야기의 증거 영상 등이 차례로 공개되고 그의 모든 과거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증거가 된다. 아오야기는 그를 사살하기 위해 다가오는 경찰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결백을 증명해야만 한다.추억의 감성코드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이나 스펙터클은 없지만 일본 문화콘텐츠 특유의 아기자기한 구성과 스토리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무엇보다도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심리적·정서적 코드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비틀스의 노래 ‘골든 슬럼버’와 도요타의 코롤라 자동차는 공교롭게도 탄생연도가 1960년대로 엇비슷하다. 반면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애플의 아이팟나노와 막판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아이돌 스타는 현대 소비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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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중세의 토지는 누구 소유였는가

    토지소유는 농업사회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결정한다. 농업사회의 생산성은 당연히 농업의 생산성에 달려 있으며, 농업의 생산성은 가장 기초적인 생산요소인 토지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에 직결되어 있다. 토지를 가장 잘 이용할 개인이나 조직이 토지를 소유하는 사회가 생산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소유로부터 얻는 지대 소득이 전체 소득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을 것이므로 농업사회의 소득분배는 토지소유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에 좌우될 것이다.중세의 토지는 누구의 소유였을까? 서양 중세의 봉건제사회에서 토지의 소유자는 영주였지만 농노들도 그 땅을 물려받아 자식에게 상속하였고, 영주도 농노를 쫓아내거나 마음대로 땅을 팔 수 없었다. 주군으로부터 봉토로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고 신분과 함께 장자에게 상속해야 하였다. 이렇게 하나의 토지에 영주의 법적인 소유와 농민의 사실상의 소유가 겹쳐 있었다는 점에서 서양 중세의 토지소유는 중층성을 지니고 있었다.영주는 법적으로, 농민은 사실상 소유우리나라의 중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토지소유도 중층적이었을까? 한때 모든 토지가 국유라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 근거가 되었던 “하늘 아래에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는 왕토사상은 문자 그대로 모든 땅이 왕이나 국가의 소유라는 뜻은 아니며, 민간의 사유지로부터 조세를 수취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였다는 토지사유론이 대세가 되었다. 오랫동안 국유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토지사유의 증거를 찾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통일신라시대의 경주 숭덕사 비문에는 왕실의 능을 조성한 곳이 왕토였지만 공전(公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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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가 말하지 못하는 것…가능성 '제로'?…자메이카의 봅슬레이 금메달 도전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쿨러닝’ 을 통해 본 GDP와 경제 성장  1987년 11월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 달리기 선수인 데리스(리온 분)가 레게머리 절친인 상카(더그 E 더그 분)를 설득 중이다. 3개월 뒤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봅슬레이 선수로 출전하자는 것. 상카는 얼음이란 단어만 듣고도 말문이 막힌다. 열대지방에서 얼음이란 아이스크림 상점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 기막힌 도전에 슬슬 가속도가 붙는다. ‘유명해져서 과자 포장지에 얼굴이 나오고 싶다’는 이들의 꿈은 이뤄질까. 1993년 개봉한 코미디영화 ‘쿨러닝(Cool Runnings)’ 얘기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단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승률 ‘제로(0)’로 보이는 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자메이카와 동계올림픽의 ‘잘못된 만남’ 때문일 것이다. 봅슬레이라는 작은 썰매에 오를 수 있는 승차권은 부자나라들에나 허용됐으니 말이다. 국민소득이 중요한 이유 육상소년 데리스는 돌멩이와 휴지로 만든 간이코스에서 날마다 뜀박질을 한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이라는 평생의 꿈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좌절되고 만다. 그가 이름도 생소한 봅슬레이에 눈을 돌린 계기는 ‘단거리 육상선수가 봅슬레이에 강하다’는 누군가의 한마디였다. 하루빨리 섬을 벗어나고 싶다는 욜(말릭 요바 분), 소심한 마마보이 주니어(롤 D 루이스 분), 푸시카트(자동차를 본뜬 손수레) 경주 챔피언인 상카가 오합지졸 선수단에 합류한다. 이들의 훈련은 웃음거리다. 빙상장도 없는 이곳에서 완공에만 1200억원(평창올림픽 기준)이 드는 봅슬레이장은 엄청난 사치다. 이 때문에 녹슨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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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중세 농업의 발전 방향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을 1차 산업, 농업의 시작을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삶에 농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 생산성이 낮은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량 생산에 투입되어야 했으므로 2차 산업(제조업), 3차 산업(서비스업)의 발전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국제무역의 규모가 작았을 뿐 아니라 높은 운송비용으로 인하여 농산물처럼 무겁고 가치가 낮은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중세의 경제발전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식량 생산이 증가해야만 하였다. 한국 중세의 인구추세는 자료가 부족해서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던 것은 분명하다. 고려 중기인 12세기에 300만명, 14세기 말 조선왕조 개창 당시에 500만명, 19세기 후반 개항할 때 1700만명이라는 추정에 따르면 중세 동안 장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고려시대보다 조선시대가 인구증가 속도가 빨랐다. 이런 인구 증가는 식량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생산요소(노동, 토지, 자본)의 하나인 ‘노동’이 증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식량 생산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하지만, 계속 인구가 늘어나면 종국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노동의 투입으로 획득되는 식량이 점차 줄어드는 지점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는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식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그림). 중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맬서스 함정’에 빠져 있는 경제였다. 생산성 증가해야 인구증가 지속 가능 식량이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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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서 6장 팔린 음반, 남아공에서 수백만장 팔린 '미스터리'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서칭 포 슈가맨’을 통해 본 해적판 경제학 1969년 초겨울, 미국 디트로이트의 밤은 을씨년스러웠다. 비 오는 밤이면 시내 외곽의 낡은 선술집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슈가맨, 서둘러 주겠니. 이 삶의 풍경이 너무 지겹거든. 푸른 동전을 줄 테니 가져다줘. 내 무지개색 꿈을 돌려줘.” 묘한 목소리였다. 어둡고 쓸쓸한 디트로이트 거리와 골목들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음색. 사람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가리켜 ‘거리의 음유시인’ 또는 ‘도시의 현인’이라 불렀다.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왜 노래를 부르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음반업체 관계자도 그 목소리에 매료됐다. 그렇게 해서 제작한 그의 첫 앨범. 하지만 곧 미국에서 가장 비극적인 음반이 된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달랑 여섯 장만 팔린 것. 음반업체 관계자는 지금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다시 선술집에 나타나지 않았죠. 정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서칭 포 슈가맨(2012)’은 1970년대 실존 인물 시스토 로드리게스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슈가맨은 앨범 타이틀곡 제목이자 로드리게스의 애칭이다. 실패의 복잡한 이유 “수천 번도 넘게 생각했습니다. 마케팅이 부족했나? 사회 비판적인 가사 때문이었을까?” 영화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당시 음반을 만든 제작자였다. “어쩌면 로드리게스라는 이름이 문제였을 수도 있죠. 당시 백인들은 라틴계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로드리게스의 실패는 제작자가 수요를 잘못 예측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프 1>에서처럼 수요곡선은 예상과 달리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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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고려시대, 재정과 경제 통합

    관료제 국가가 봉건제 국가와 달랐던 것은 중앙집권적인 재정제도가 성립되어 국가가 사회적 분업과 경제통합을 주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8회 참조) 봉건제 국가에서도 국왕이 있었지만 각 지방의 영주들에게 ‘불수불입권(不輸不入權·immunity)’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료제 국가처럼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조세를 징수하거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 ‘국왕 자활의 원칙’에 의해 자기 영지의 수입만으로 재정을 운영해야만 했던 봉건제 국가와 달리 고려왕조(918~1392)는 국가재정에 필요한 재화와 노동력을 전국 어디에서나 수취할 수 있었다. 시장 미발달- 현물로 세금 거두고 지출 지금 같으면 국가재정에 필요한 재화와 노동력은 대부분 시장에서 구입하면 되겠지만,시장경제 발달이 미약했던 시대에는 그럴 수 없었다. 고려왕조는 996년의 철전 발행을 시작으로 1102년 이후 해동통보와 같은 동전을 발행했지만 제대로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세를 수취하여 필요한 물자와 노동력을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쌀과 삼베를 비롯한 각종 재화를 현물로 징수하거나 직접 제작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물화를 개경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수운에 필요한 13개소의 조창을 설치했으며, 육상 운송을 위해 전국적으로 도로망을 갖추었는데 22개 도로에 525개소의 역이 설치됐다. 육운보다 편리하다는 수운의 경우에도 4분의 1가량이 운반비용으로 지출된다고 할 정도였고 배가 침몰하는 사고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이동하는 재화의 물량과 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었다. 근대적인 화폐 재정에서는 매년 편성되는 예산에 따라서 국가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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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오클랜드 20연승…경제학적 상상력이 '장외홈런'을 날렸다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머니 볼’을 통해 본 트레이드 경제학 “모두 야구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트레이드에서) 중요한 건 선수가 아닌 승리를 사는 거예요. 승리하기 위해 득점을 올릴 선수를 사야죠.”(피터 브랜드) 1989년 마지막 우승 이후 형편없는 팀으로 전락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좀 하는가 싶다가도 시즌이 끝나면 주전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뺏기기 일쑤다. 열악한 구단 재정으로 선수를 붙잡지 못하는 탓이다. 2001년 디비전시리즈에서 맞붙은 뉴욕 양키스와 애슬레틱스 선수단 연봉은 ‘1억1400만달러(양키스) 대 3900만달러(애슬레틱스)’. 애슬레틱스는 양키스에 시리즈 전적 2 대 3으로 석패했다. 이듬해인 2002년. 우승하곤 거리가 먼 구단이란 오명을 벗어던지고 싶은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은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 경제적인 야구를 해야겠다는 판단에 따라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부단장으로 전격 영입, 기존의 선수단 운영 방식을 완전히 파괴해버린다. 오직 통계로 짜여진 ‘승리 공식’을 따라 스타 플레이어를 과감하게 방출하는가 하면 다른 구단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선수를 팀에 합류시키기도 한다. 나이가 많아 퇴물 취급을 받던 데이비드 저스티스, 사생활이 문란한 제러미 지암비, 특이한 투구자세에 공까지 느린 채드 브래드포드 등을 이런 식으로 속속 영입했다. 2011년 개봉작 ‘머니 볼’ 얘기다. 한계타율과 평균 타율 빈은 선수 영입에서 출루율을 중시한다. 그는 선수들에게 “야구는 피차 소모전이다. 출루하면 이기고 못 하면 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타율과 도루보다는 출루율과 OPS(출루율+장타율)에 무게를 둔 선수 영입이다.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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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우리나라 중세는 서양 중세와 무엇이 달랐는가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식민지시대부터 우리나라 중세가 서양의 중세와 닮은 점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근대 이후 세계를 제패한 유럽의 역사가 정상적인 발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만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였던 이유가 봉건제를 경험하였기 때문이라는 역사관을 비판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인류가 원시공동체,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단계를 밟아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전진하는 것이 법칙이라고 믿었던 마르크스 주의 역사학자에게는 그러한 역사법칙이 한국사에서도 관철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미래의 전망을 위해서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 중세에서 봉건제를 ‘발견’하려는 시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군사력을 보유한 영주들이 국가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영지를 독립적으로 지배하는 서양 중세와 국왕이 과거제도로 선발한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여 전국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한국 중세를 똑같이 봉건제 사회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집권적 통치와 지방 영주들이 지배하는 분권적통치 무엇보다 서양 중세의 분권적인 정치체제와 대조적인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봉건제 앞에는 ‘아시아적’, ‘집권적’, ‘국가적’, ‘관료적’과 같은 다양한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천동설을 지탱하기 위해서 주전원을 고안한 것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이러한 학술적 곡예를 통해서 다른 점은 모두 지우고 남은 봉건제는 대토지소유자가 토지소유에 기초하여 타인노동을 착취하는 제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