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세계무역 주도한 네덜란드
발트해 무대로 소금 교역, 막대한 부 쌓아
유럽 물자공급 움켜 쥔 중앙 저장소 역할
어업산업 일으킨 '청어혁명'
청어 저장에 소금 사용…기업·기술 발전해
청어 잡은 후 소금에 절여 팔며 이익 극대화
언어에도 깊은 흔적 남겨
네덜란드 관련 표현, 대부분 부정적 느낌
Dutch concert(소음), Dutch defence(항복) 등
발트해 무대로 소금 교역, 막대한 부 쌓아
유럽 물자공급 움켜 쥔 중앙 저장소 역할
어업산업 일으킨 '청어혁명'
청어 저장에 소금 사용…기업·기술 발전해
청어 잡은 후 소금에 절여 팔며 이익 극대화
언어에도 깊은 흔적 남겨
네덜란드 관련 표현, 대부분 부정적 느낌
Dutch concert(소음), Dutch defence(항복) 등
네덜란드 성장의 발판은 처음에는 소금, 곧이어서는 청어가 담당했다. 네덜란드가 국제 교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 발트해 교역에서부터다. 원래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 발트해 주변 지역에선 필요한 소금을 북독일이나 폴란드의 암염 광산에서 생산한 암염으로 한자동맹 무역망을 통해 공급받아 사용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부터 발트해 지역의 소금 교역은 네덜란드인의 주무대가 된다. 네덜란드인들은 프랑스 서부 지역과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생산하는 풍부한 바닷소금을 공급하며 부를 쌓았다. 곧이어 프랑스산 와인 등으로 교역 품목을 확대했다. 벌크선을 통한 각종 화물 교역도 점차 늘려나갔다.
소금 교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적잖은 위기와 저항도 있었다. 17세기 합스부르크 스페인이 네덜란드와 대립하면서 스페인은 네덜란드 선박에 대한 엠바고를 시행했다. 이베리아반도산 소금 무역에서 네덜란드 상인이 축출된 것이다. 하지만 영국과 한자동맹 상인들은 선박이 부족해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북유럽에서 소금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소금 가격이 급상승하는 부작용만 빚어졌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소금을 얻기 힘들어지자, 네덜란드는 1621년 이후 포르투갈산 소금 교역 비중을 줄이는 대신 서부 프랑스산 소금으로 대체를 시도했다. 하지만 프랑스산 소금은 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생선 저장용으로 부적합했고, 스칸디나비아와 네덜란드에 있는 ‘청어 항구’의 수요를 맞추지 못해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네덜란드가 거래한 소금의 상당량은 청어 저장에 사용했다. 청어는 소금과 함께 네덜란드를 먹여 살린 핵심 자원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청어 어업을 기업화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네덜란드인들은 ‘청어 부스(herring buss)’라는 원양어업이 가능한 선박을 개발했다. 15세기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개발한 청어 부스는 어획량을 늘리는 데 특화돼 있었다. 네덜란드 선박은 화물 적재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어선에도 이런 특성을 적용한 것이다. 경쟁국인 영국의 배들이 중무장한 채 사람을 많이 태우고 지중해로 가는 목적으로 튼튼하게 건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네덜란드 선박들은 최소 선원으로 최대의 경제효과를 얻는 데 초점을 맞췄다.
원래 발트해 지역 어업은 청어보다 훨씬 맛이 있는 스웨덴 남부 지역에서 잡히는 고품질 어류 어획이 주를 이뤘다. 반면 청어잡이는 기본적으로 공장식 어선으로 운영했다. 이들 배는 포경선을 비롯해 오늘날 냉동 시설을 갖춘 어류 가공선의 직계 조상뻘이다.
기존 선박에 비해 청어 부스는 더 오랜 기간(5~8주) 바다에 머물 수 있다. 선상에서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등 어획물도 가공할 수 있었다. 소금에 절이는 속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혁신도 이뤄졌다. 그 결과 항구에서 더 먼 곳에서도 어업이 가능해졌다. 이는 해안 가까이에서 청어 떼가 감소하던 시기에 북해 전역을 누비며 청어 떼를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청어잡이는 단순히 배의 개선에만 그치지 않았다. 청어잡이를 위한 기업 조직이 구체화되고 자본 조달이 복잡해졌다. 도시 자본가 집단이 특정 선박에 공동 투자해 특정 개인투자자의 투자 범위를 제한하는 파트너십 형태인 ‘파르텐레데리(partenrederij)’도 등장했다. 여러 사람이 배의 소유권을 나눠 갖는 이 네덜란드의 관행은 배를 건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줬다.
16세기에 이런 복잡하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17세기 초가 되면 홀란트가 운영 중인 청어잡이 배만 500척에 달했다. 이에 따라 청어 어획량은 16세기 중반에 비해 거의 4배나 증가했고, 네덜란드는 청어 시장을 독점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7세기 말까지 네덜란드의 청어 독점은 지속됐다.
비록 일부 기업이 10척까지 보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청어잡이 기업은 청어 버스를 한두 척만 소유했기에 청어잡이에 종사하는 기업가 수는 상당히 많았다. 청어를 잡는 것보다 소금에 절인 청어를 거래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이는 발트해 연안에서 네덜란드의 주요 수출품이 됐다. 이 ‘청어 혁명’의 경험은 네덜란드가 막대한 부를 쌓는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는 소금과 청어를 발판 삼아 막대한 부를 쌓아나갔다.
그리고 이런 활약상은 언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영국이 네덜란드와 라이벌 관계였던 탓에 네덜란드와 관련된 영어 표현은 대부분 부정적 뉘앙스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Dutch courage’는 술 먹은 김에 부리는 용기를, ‘Dutch concert’는 소음을 의미하는 식이다. 직역하면 네덜란드식 방어가 되는 ‘Dutch defence’는 항복을 뜻하고, ‘Dutch feast’는 주인이 손님보다 먼저 취해버린 파티를 의미한다. ‘Dutch uncle’은 위로하는 척하면서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Dutch bargain’은 함께 술 마시고 하는 거래이며, ‘Dutch widow’는 창녀, ‘Dutch nightingale’은 나이팅게일 새의 일종이 아니라 우는 소리가 시끄러운 개구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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