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산업보호와 포획이론
올해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 타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마스가(MASGA)’ 프로젝트였습니다.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의미인 이 프로젝트는 한국과 미국의 조선업 협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왜 한국에 조선업 협력을 요청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미국 조선업은 현재 어떤 상태일까요?미국 조선업이 몰락한 이유는?
[테샛 공부합시다] 자국 산업 보호하려다 경쟁력 발목 잡혀
미국도 한때 조선업 경쟁력이 막강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강력했던 요인 중 하나는 압도적 군함 건조 능력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막강한 함대를 구축했습니다. 전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상선 분야에서도 세계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높은 경쟁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상선 하나 제대로 건조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 프로젝트에 미국이 호응한 것도 자국 조선 산업의 몰락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존스법’과 ‘번스-톨레프슨법’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1920년에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항만 간 화물운송에 미국에서 건조한 미국 국적 선박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선원도 미국 시민 또는 영주권자로 구성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또한 1960년대 제정된 번스-톨레프슨법은 미국 군함과 그 주요 구성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거나 조달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조선업체는 자국 시장에서 수주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사라지자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성 향상이 정체되면서 품질이 하락했습니다. 게다가 선원 대부분을 미국인으로 고용해야 했기 때문에 임금이 올라 가격경쟁력도 하락했습니다. 결국 외국은 물론 자국 선사들조차 미국산 선박을 외면했고, 현재 미국 조선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이익집단에 포획된 규제기관그렇다면 미국은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이 법들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함에도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조선업계, 노조, 해당 지역구 정치세력의 반대와 강력한 로비 때문입니다. 이를 ‘포획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가 1971년 ‘경제 규제의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이 이론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만드는 정부와 의회가 오히려 피규제자인 이익집단의 영향력에 의해 포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공의 이익보다 이익집단의 이익이 우선되면서,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가 유지되거나 새로 도입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의회는 존스법 폐지나 예외 규정을 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익집단의 반발로 여러 차례 무산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마스가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한국 조선사가 건조한 선박이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미국 의회가 포획 이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규제를 폐지하거나 예외 규정을 신설해 조선업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