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 베네치아, 무슬림 지배 아프리카에
슬라브족 노예 팔아 막대한 양의 금 확보
프라하에선 대규모 노예시장 들어서
체코·폴란드서도 12세기까지 매매 기록
슬라브노예, 현대 영어 '슬레이브' 어원 돼
슬라브족 노예 팔아 막대한 양의 금 확보
프라하에선 대규모 노예시장 들어서
체코·폴란드서도 12세기까지 매매 기록
슬라브노예, 현대 영어 '슬레이브' 어원 돼

서유럽과 슬라브족, 아랍 세계의 교역을 중개하던 유대인 상인이 슬라브족에게서 구입한 각종 생필품과 원재료는 상당량이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넘어가 그곳에서 소비됐다. 다만 슬라브 지역 주요 ‘수출품’ 중 북·중 유럽 시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노예였다. 북·중유럽에선 농업구조상 노예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슬람 점령 아래 있는 이베리아반도(스페인)와 아프리카 지역에는 슬라브족 노예가 ‘대량’으로 수출됐다. 그곳에서 군인과 가사 노동, 장인 작업장의 조수로 활용한 것이다.
이슬람 지배 지역에서는 슬라브인 노예 수가 매우 많았다. 압드 아르-라흐만 3세(912~961)의 통치 기간 코르도바에 있던 슬라브인 노예 수는 약 1만4000명에 달했다. 코르도바에서 10세기 후반~11세기 초에 슬라브 노예 출신은 경비대와 환관 등 행정부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많은 무슬림 사료뿐 아니라 9세기 리옹의 아고바르드와 10세기 크레모나의 리우트프란드와 성 아달베르트는 마인츠, 베르덩, 리옹에서 거세된 노예들이 이슬람 치하 스페인으로 수출됐다고 언급한다. 초기 슬라브 도시 중에선 프라하가 10세기에 ‘기독교인 노예(mancipia christiana)’를 비롯해 각종 노예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선 프랑크족이나 작센족 영주들의 포로뿐 아니라 슬라브족 통치자들이 내다 판 자신들의 신민들이 유통됐다. 베네치아는 슬라브족 노예를 무슬림이 지배하는 아프리카에 수출해 막대한 양의 금을 확보했다.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 지역의 국가에서도 12세기까지 많은 노예가 수출됐고, 모라비아인도 자국 노예를 외국 시장에서 처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12세기 후반 투델라의 벤야민은 노예무역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발히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12세기 초에 저술된 초기 러시아 <연대기>들도 이전 시대 노예무역의 실상이 담긴 단편들을 남겼다. 스뱌토슬라프 이고레비치(942~972) 키예프 대공은 수도를 키예프에서 도나우 강가로 옮기려고 계획하면서 그 근거로 “그리스의 황금과 좋은 옷, 와인이 모이고 보헤미아와 헝가리에선 은과 말이, 러시아에선 모피와 밀랍, 꿀, 그리고 노예가 오는 곳에 도읍을 삼길 원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인 <루스카야 프라브다>에 따르면 노예의 지위는 비참했고,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다. 노예가 자유민을 구타한 경우 얻어맞은 자유민은 그 노예를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노예를 살해하더라도 형사상의 벌인 ‘살인 배상금(비라, вира)’이 전혀 없었고, 소유주인 주인에게 ‘재산에 가한 손해’ 때문에 적은 액수의 벌금만 지불했다. 반면 상급 친위 대원(크냐지 무지, княжи мужи)을 살해하면 보통보다 2배나 무거운 형법상의 살인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처럼 지중해 유역에서 슬라브인 노예가 흔해지면서 9세기 아랍 세계에서는 ‘사클라브(saqlab)’라는 단어가 노예를 지칭하는 데 널리 사용했다. 서구 라틴어 문화권에선 ‘스클라부스(sclavus)’라는 용어와 다양한 파생 단어가 폭넓게 쓰였다. 아마도 이들 단어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슬라브족을 지칭하던 ‘스클라비(sclavi)’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노예를 지칭하는 현대 영어 ‘슬레이브(slave)’의 어원이 됐다.
몽골의 지배 이후에도 러시아 지역은 노예 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했다. 사라이와 타나, 그리고 카파는 14세기까지 중요한 노예 시장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카파에선 15세기까지 노예거래가 활발했는데, 이들 노예는 제노바 상인들의 손을 거쳐 주로 이집트와 시리아, 튀르키예 지역으로 팔려나갔다.
현대 러시아어에도 노예와 관련된 단어들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초기 러시아 사회에서 남자 노예는 홀로프(холоп), 여자 노예는 라바(раба)라고 불렀는데 이 노예에서 파생된 단어가 ‘일하다’라는 뜻의 ‘라보타치(работать)’다. 고대 러시아어에서 ‘라브(раб, 교회 관련 고문헌에 등장하는 남성 노예)’와 ‘라바’의 동사형인 ‘라보타치’라는 단어는 ‘주인에 대한 노예의 관계’나 ‘고용 관계로 일하는 노예 상태로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농사일로 대표되는 힘든 노동이란 뜻은 ‘스트라다치(страдатъ)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하다’라는 용어는 노예에서 파생된 ‘라보타치’가 대체해버렸다.
같은 슬라브어 계열인 체코어에서도 ‘로봇(robot)’이라는 단어의 근간이 된 ‘라보타(robota)’가 강제노역, 농노의 노동, 농노가 영주에게 행하던 의무 시역, 힘들고 단조로운 일 등을 의미했다고 한다. 힘들고, 위험하고,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길 존재를 희망한 끝에 상상해낸 존재가 로봇이라는 것임을 그 명칭에서부터 분명히 한 것이다.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슬라브 지역 최대 수출품은 '노예'](https://img.hankyung.com/photo/202508/01.4115727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