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쿠폰 풀렸지만 경제 전망 '글쎄'
재정지출 확대, 경기부양 효과 제한적

총수요 늘면 물가·임금도 상승
생산요소 가격 오르며 총공급 감소
프리드먼 "임시소득, 소비보다 저축 늘려"
[경제야 놀자] 30조 풀어도 0%대 성장…이유는 '정책 무력성'
소비쿠폰 13조원이 풀렸다. 소비쿠폰을 포함해 3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된다. 그럼에도 주요 연구기관의 경제 전망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0.8%로 내다봤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는 등 소비쿠폰이 물가를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가 침체했을 때 정부는 다양한 부양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뜻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소고기는 한 번뿐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총수요가 증가한다. 총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물가는 오르고 국민소득은 늘어난다.(<그림1>E1→E2) 물가가 어느 정도 상승하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경기 부양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활성화 효과는 지속되기 어렵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을 비롯해 다른 생산요소 가격이 함께 상승한다. 그렇게 되면 총공급이 감소해 국민소득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고 만다.

재정 지출이 생각만큼 경기 부양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물가가 오르면 화폐 수요가 커진다. 화폐 수요 증가는 이자율을 밀어 올린다. 이자율 상승은 기업 투자 감소를 불러오고 투자 감소는 총수요 하락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정 지출을 확대한 영향으로 높아진 물가는 경기 부양 효과가 소멸한 뒤에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높아진 수준에 머문다.(<그림1>E2→E3) 소비쿠폰으로 온 가족이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소비쿠폰을 다 쓰고 나면 앞으로는 소고기를 사 먹기가 더 부담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 쿠폰을 또 받는다면?어떤 경제학자는 경기 부양책이 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으로도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기대 이론’을 주창한 로버트 루카스, 토머스 사전트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합리적 기대 이론이다.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경기 부양책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내는 원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낮아진다.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고용을 늘릴 여지가 생긴다. 그 결과 고용이 확대되고 경기가 좋아진다.(<그림2>A→B)

그런데 근로자들이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근로자들은 곧바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 총공급이 감소하고, 재정 확대로 나타난 총수요 증가 효과를 상쇄한다. 이런 식으로 경기 부양책이 단기적으로도 물가만 올릴 뿐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내지 못한다고 보는 견해를 ‘정책 무력성의 명제’라고 한다.(<그림2>A→C)

정부가 돈을 뿌리면 고깃집 사장은 손님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가격을 미리 올릴 가능성이 있다. 만약 가계가 미래 물가 상승을 예측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다면 재정 지출이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는 반감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재정 지출이 기대한 효과를 못 내는 이유를 ‘항상소득가설’로 설명했다. 매달 받는 월급은 항상소득, 소비쿠폰처럼 비정기적으로 생기는 돈은 임시소득이다. 프리드먼은 항상소득이 높아지면 소비가 증가하지만 임시소득은 소비보다 저축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임시소득은 앞으로 또 얻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그렇다고 해서 경기 부양책이 무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책 무력성 명제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기대를 한다고 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항상 합리적으로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또 가격과 임금에는 경직성이 있다. 근로자들이 물가 상승 폭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그에 부합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해도 임금이 곧장 오르지는 않는다. 손님이 몰릴 것이 확실하다고 해서 가격을 바로 올리는 음식점 사장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면 경제주체들은 기대와 행동을 바꾸고, 그로 인해 정책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1. 정책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뭘까?

2. 합리적 기대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3.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소득가설’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