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⑧ 삶과 죽음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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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여, 아카이아인(人)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여, 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물어보러 왔소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바위 많은 이타케에 닿을 수 있겠는지, 그가 혹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오. 나는 아직도 아카이아 땅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내 자신의 나라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만 당하고 있소. 그러나 아킬레우스여, 그대로 말하면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가 아직 살아 있을 적에 우리들 아르고스인들이 그대를 신처럼 공경했고, 지금은 그대가 여기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

이렇게 내가 말하자 그(아킬레우스)는 지체 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죽음에 대하여 나를 위로하려 들지 마시오, 영광스러운 오뒷세우스여. 나는 죽은 자들 모두를 통치하느니 차라리 시골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가산(家産)도 많지 않은 다른 사람 밑에서 품팔이를 하고 싶소. 자, 그대는 내 의젓한 아들 소식이나 전해주시오. 그 애는 제일인자(第一人者)가 되기 위하여 전쟁터로 나갔소? 아니면 그러지 않았소? 그리고 나무랄 데 없는 내 아버지 펠레우스에 관해서도 들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오. 그분께서는 아직도 뮈르미도네스족(族) 사이에서 명예를 누리고 계시오? 아니면 노령(老齡)이 그분의 손발을 묶었다고 해서 헬라스와 프티아에서 사람들이 그분을 업신여기고 있소? 나는 더 이상 햇빛 아래서 그분을 보호하지 못하며, 넓은 트로이아에서 가장 용맹한 적들을 죽이고 아르고스인들을 지켜주던 때처럼 그렇게 강력하지도 못하오. 그때의 힘을 지니고 내가 잠시나마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었으면!”

[문제1] 오뒷세우스와 아킬레우스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고,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시오.

[문제2] 제시문을 근거로, 아킬레우스가 이승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어떤 삶을 살지 유추해보시오.

서울대학교 2016학년도 일반전형 심층 면접의 문제입니다. 오뒷세우스는 죽음을 영광의 완성으로 인식합니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생전에 신처럼 존경받고, 죽어서는 저승의 통치자가 된 것을 부러워하며 죽음을 긍정합니다. 반면 아킬레우스는 죽음을 통한 명예를 후회하며, 살아 있는 머슴의 삶조차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는 생명 그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보게 되었으며, 죽음의 허망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생존을 지상 과제로 삼았던 오뒷세우스와 명예를 좇아 일찍 죽음을 선택한 아킬레우스의 삶의 방향성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들의 왕이라는 지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삶을 간절히 갈망합니다. 따라서 이승으로 돌아온다면 전쟁과 명예를 좇지 않고, 가족 곁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할 것입니다. 그는 햇빛 아래 살아 숨 쉬는 것 자체를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며 인간적인 삶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생각 속에는 삶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에 대한 기본적 생각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은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동서양에서 모두 죽음은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교과서에서는 죽음에 대한 심신이원론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지요. 그중 심신일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원래 하나로 작용하는 주체(主體)의 양면이며, 이것을 2개의 실체로 갈라놓고 그것을 통합해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인간은 심신이 일체적·일원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바탕을 두면 죽음은 육체의 자연스러운 소멸이자 끝을 의미합니다. 한편 심신이원론은 데카르트에 이르러 정확히 명시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마음과 몸의 관계를 제각기 독립된 별개의 실체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존속된다는 믿음의 토대가 됩니다.

아래의 지문이 심신일원론과 심신이원론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분류하고 요약해봅시다.

[지문1]

“오오 나의 벗이여”라고 소크라테스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라면 이제 인생 여로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로 향함에 있어, 평생 추구해온 것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네. 그러므로 나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는 걸세. 나뿐 아니라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고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갈 걸세.” “아주 옳은 말씀이외다”라고 심미아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정화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즉 영혼이 모든 방면에서 육체로부터 떠나 자기 자신을 수습하고 저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자기만으로 사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고 해방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참 철학자들만이 오로지 영혼을 이와 같이 해방시키려 하는 거야. 육체로부터 영혼의 분리와 해방이야말로 철학자들이 특별히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의 상태에 가깝게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 막상 죽음에 당면해서 마다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오오 심미아스, 참 철인(哲人)은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덜 무서워하는 자일세. 이렇게 생각해보세. 그들이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과 더불어 순수하게 되기를 원했다면 말일세.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어 하데스(사후 세계)에 도착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바라던 지혜를 얻게 될 희망이 있고, 동시에 그들의 원수와 함께 있지 않게 될 걸세. 그런 곳으로 떠나려 할 즈음에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떨고, 싫어하는 것처럼 모순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문2]

아래는 조선 단종 때의 충신이자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절명시다. 본디 시의 제목은 없으나 편의상 절명시라 이름한 이 시는, 지은이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즉흥시다.

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도 지려 하는구나,
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 하니,
오늘 밤은
어느 집에 묵고 간담?

지문1]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자는 살아 있는 동안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고 정화하는 데 힘쓰며,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통해 궁극의 진리에 도달할 희망을 품는다고 말한다. 그는 철인이야말로 죽음을 자연스러운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이며, 이 세속적 삶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지혜에 이를 수 있음을 기쁘게 여긴다고 주장한다.

지문2] 성삼문은 죽음 앞에서도 덧없음이나 비애에 머물지 않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반복과 순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황천에도 주막 하나 없음을 담담히 노래함으로써 생애의 끝마저 거대한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존재의 무상함을 넘어선 깊은 사유와 평온한 죽음의 의식을 드러낸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두 지문은 모두 심신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위 예시처럼 제대로 된 요약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글의 ‘논리’를 이해하고 ‘자기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꾸준한 연습이 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