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수능후 논술대학 유형 - 경희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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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희대학교 인문논술을 접하는 학생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낍니다. 문제를 보면 제시문이 길고, 서로 다른 주장들이 얽혀 있어 무엇을 써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희대 인문논술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명확한 원리를 가진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글솜씨를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 속 서로 다른 관점을 분석하고 비교함으로써 더 타당한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즉 문장을 잘 꾸미는 능력보다 사고의 방향과 근거의 논리성이 더 중요합니다.

경희대 인문논술의 모든 문제는 기본적으로 ‘비교’와 ‘평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시문들은 각기 다른 주장을 담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기준이 되고 나머지는 그 기준과의 일치나 불일치 속에서 평가됩니다. 학생이 해야 할 일은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각 제시문의 핵심 주장과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관계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희대 인문논술의 출발점이자, 모든 문제를 푸는 기본 원리입니다.

제시문은 대부분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주장문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주장이라기보다 상황 전달적 제시문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현대시 등이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각 제시문이 무엇을 주장하고,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경희대 논술은 요약과 비교·평가를 중심으로 한 확정적 유형으로 출제됩니다. 첫째, [논제Ⅰ]은 기준 제시문을 중심으로 다른 제시문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다면적 비판 사고 유형의 논제입니다. 둘째, [논제Ⅱ]는 4개의 제시문을 두 입장으로 분류해 서로를 평가하는 대립형 찬반 논제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찬성과 반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 입장의 논리 구조와 한계, 그리고 결과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글의 목적은 누가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점이 왜 더 설득력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장을 화려하게 쓰기보다 제시문의 논리를 분석하고, 관점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경희대학교 인문논술의 1번 문제는 기본적으로 ‘비교·평가형’ 구조입니다. 제시문 3개 중 하나가 기준 제시문(심판)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 두 제시문은 입장이 서로 다른 비교 대상(선수)이 됩니다. 이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심판의 입장에서 두 선수의 논리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즉 “심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A선수의 생각은 옳고, B선수의 생각은 다소 어긋난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풀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심판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준 제시문이 무엇을 문제로 보고, 어떤 원리나 가치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라는 주제가 주어졌다면, 기준 제시문은 그 문제를 ‘사회구조의 불평등’으로 볼 수도 있고, ‘기술의 한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기준이 곧 심판의 규칙이자, 다른 제시문을 평가할 때의 잣대가 됩니다. 그다음은 비교 대상 제시문들을 이 잣대에 맞춰 판단하는 단계입니다. 기준 제시문과 논리의 핵심이 같다면 “일치하지만, 방식이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고, 핵심 원인이나 해결 방식이 다르다면 “본질적으로 어긋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6학년도 예고편 문제를 보면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제시문 약식 정리]

(다) - 기후 위기에 대해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한 접근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그러한 접근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적인 환경운동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먼저 조정해야 한다.

(가) -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응하여 다양한 가치관을 회복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기업의 욕망은 더 근본적인 다양성의 가치를 없애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연대의 조직 등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나) -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물 복원이 필요하다.

위 세 제시문을 보면 모든 제시문은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준인 제시문 (다)는 기후 위기의 원인을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 즉 자본주의적 불평등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가)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며 사회운동을 통한 가치 전환을 제시했으므로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나)는 식물 복원이라는 자연 중심의 해결책을 강조했으므로 사회구조의 문제를 간과한 한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같은 길을 가고 있더라도 (다)는 인식적 전환, (가)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결국 (다)의 시각에서 보면 (가)는 ‘같은 방향을 현실로 확장한 실천적 제시문’, (나)는 ‘문제를 좁게 본 제한적 제시문’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다)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고, (가)는 그 지도를 따라 실제로 길을 걸어 나간 사람입니다. 반면 (나)는 지도의 다른 구역, 즉 숲속 길로 들어가 버린 셈입니다. 이처럼 기준 제시문의 사고 방향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비교하면, 복잡해 보이는 제시문도 훨씬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번 문제는 ‘두 진영 간의 논리 대립과 비판’을 다루는 문제입니다. 4개의 제시문이 주어지면, 그중 2개씩이 비슷한 입장을 이루어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26학년도 예고편도 [라]와 [바]가 공존 중심, [마]와 [사]가 경쟁 중심의 입장을 대표했습니다. 이때 2번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누가 옳은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각 진영의 논리를 비교하고 한 입장의 시각으로 다른 입장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즉 A진영의 입장에서 B진영을 바라보고 ‘왜 그들의 생각이 완전하지 않은가’를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문제에 접근할 때는 세 단계를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입장 분류입니다. 4개의 제시문을 먼저 읽고, 어떤 기준으로 두 진영이 나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때는 “이들은 무엇을 중심 가치로 보는가?”를 기준으로 잡으면 좋습니다. 단, 상반된 것으로 분류하려 하지 말고 유사한 것끼리 묶어서 입장을 먼저 명명해야 합니다. 여기에 경희대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서로가 꼭 ‘대립항’적 반대어로 구성되지 않고, 주장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에 주목한 상황적 제시문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택한 입장의 공통 논지를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존 진영의 경우 (라)는 인간의 이해와 포용을 통한 조화를, (바)는 생명체 간 균형을 통해 공존을 말했습니다. 이 두 제시문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세상의 지속은 경쟁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의 균형에 있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준 진영의 핵심 논리를 한 문장으로 세우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셋째, 비판의 논리 전개입니다. 이제 반대 진영의 관점에서 상대를 비판해야 합니다. 이때 단순히 “다르다”가 아니라 “그들의 논리는 이런 점에서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식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경쟁 중심의 입장에서 공존을 비판한다면 “공존은 이상적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발전의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식으로 귀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반대로 공존의 입장에서 경쟁을 비판한다면 “경쟁은 효율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식으로 결과를 예측해주는 게 좋습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요약하자면, 1번 문제가 기준 하나를 중심으로 타당성과 한계를 평가하는 문제라면, 2번은 두 가치가 충돌할 때 각자의 논리를 세우고, 그 관계를 평가하는 문제입니다. 비유하자면, 1번이 ‘심판의 시각’이라면, 2번은 ‘토론의 시각’입니다. 두 진영이 서로 맞서 논리 싸움을 벌이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한쪽의 대표가 되어 상대편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해야 합니다. 2번에서는 이미 서로가 논리적으로 불일치하는 구조이므로 왜 불일치하는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면 됩니다. 그 구조만 잡히면, 경희대 인문논술의 절반은 이미 해결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