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수능후 논술대학 유형 ① - 고려대
대학 논술의 본질은 문장을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문제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느냐에 있습니다. 특히 고려대학교 인문 논술은 이 점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시험입니다. 매년 주제는 달라도 문제의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회현상을 놓고 다양한 관점이 담긴 5개 제시문을 보여준 뒤 이를 바탕으로 현실적 해결책을 설계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리고 같은 제시문을 다시 이용해 철학적 쟁점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증을 완성하도록 요구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정리하거나 의견을 내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사고를 조직하고 확장하는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문제 구조를 약식으로 풀어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 문제는 각 제시문이 500~800자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문학작품과 비유, 사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 1] 다음의 제시문 ①~⑤를 읽고, <자료>(자료는 생략)에 제시된 도시 교통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3개의 제시문을 선택하시오.)

① 교통체증은 시민들의 배려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양보와 인내가 도시 질서를 바로세울 수 있다.
② 도시 교통의 핵심 문제는 출퇴근 집중이다. 근무시간을 분산하면 혼잡을 줄일 수 있다.
③ 대중교통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AI 신호제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④ 도로망 확충보다 차량 공유 서비스 확대가 지속 가능한 방법이다.
⑤ 교통체증은 문명의 불가피한 현상이며, 사람들은 어차피 적응하게 된다.

[문제 2] 위 제시문을 바탕으로, “정부가 교통을 규제하기보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찬반 입장에서 논하시오. (3개의 제시문을 선택하시오.)

위 예에서 볼 수 있듯 고려대 논술의 1번 문제는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그 내부의 인과 구조를 찾아내어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입니다. 학생은 5개의 제시문 중 3개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머지 2개는 의도된 ‘덫 제시문’입니다. 대치동 현장에서 가르칠 때도 학생들이 이 덫 제시문에 걸리는 경우를 정말 많이 목격합니다. 얼핏 옳고 중요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적 대안을 만들 수 없는 제시문이 덫 제시문입니다. 즉 추상적인 도덕적 구호나 원인을 암시할 뿐 해결 메커니즘이 없는 설명이 함정의 역할을 합니다. (물론 논리적 사고를 측정하는 논술고사의 본질상, 덫 제시문으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출제자는 이를 통해 학생이 제시문을 표면적으로 읽는지, 아니면 문제 해결의 구조 속에서 기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판별합니다. 이 문제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제시문은 둘째, 셋째, 넷째입니다. ②는 교통혼잡의 구조적 원인을 제시하고, ③은 기술적 대안을, ④는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반면 첫째와 다섯째 제시문은 덫입니다. ①은 도덕적 당위만 말할 뿐 구체적인 조정 방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⑤는 문제의 원인을 암시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체념으로 끝나며 개선의 의지를 잃게 만듭니다. 결국 학생은 ②③④를 연결해 근무시간 분산, AI 교통제어, 차량 공유 확대라는 인과적 해결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 1은 항상 원인, 수단, 구조라는 세 축을 찾는 사고의 문제이며, 단순히 ‘좋은 말’을 나열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각 제시문이 말하는 관점이 사회문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3개의 관점을 결합했을 때 어떤 작동 체계가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글을 잘 쓰는 능력보다 생각을 구조화하는 힘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5개 중 3개를 고르라는 요구는 본질적으로 “당신은 사회문제를 보는 체계를 스스로 세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문제의 두 번째 단계는 같은 제시문을 가지고 새로운 철학적 쟁점을 다루는 것입니다. 앞서 도시 교통혼잡 문제에서 세 가지 실질적 해결책(②③④)을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정부가 교통을 규제하기보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에 대해 입장을 세워야 합니다. 같은 제시문을 다시 읽되, 이번에는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전제를 기준으로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두고 찬성하는 쪽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①번 제시문은 시민의식과 양보, 도덕적 자율을 강조합니다. (이는 국가의 통제보다 개인의 자율적 행동이 질서를 회복한다는 논리로 읽힐 수 있습니다.) ③번 제시문은 기술의 효율성을 통해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AI 신호제어 시스템 같은 기술 혁신은 정부 개입 없이도 교통 흐름을 최적화하는 장치기 때문입니다.) ④번 제시문도 시장 자율의 논리를 뒷받침합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공공 인프라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찬성 측은 “시민의식과 기술 혁신, 그리고 자율적 시장의 힘이 결합하면, 정부의 통제 없이도 사회적 균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 측은 논리를 다르게 구성합니다. ②번 제시문은 문제의 핵심 원인을 ‘출퇴근 집중’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진단합니다. (이건 단순히 개인이나 시장의 자율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근무 제도와 시간 분배라는 사회적 조정 시스템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③번 제시문은 다시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읽힙니다. (기술은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그 운용 주체가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업적 이해에 따라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⑤번 제시문도 시장의 자율 논리를 약화시킵니다. (교통체증은 문명의 불가피한 현상이며 사람들은 적응하게 된다는 말은 시장의 자율이 곧 사회적 합리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부정하는 비관적 현실 인식입니다.) 즉 반대 측은 시장의 자율이 항상 공익과 연결되지 않으며, 정부의 규제가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증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제 2의 본질은 “같은 제시문을 다른 틀에서 다시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①~⑤ 제시문은 더 이상 교통체증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근거로 재맥락화됩니다. 학생은 찬반 중 어느 한쪽을 택하더라도 각 제시문이 그 명제와 어떤 논리적 관계를 맺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즉 단순히 ‘나는 찬성한다’가 아니라, ‘왜 이 제시문들이 이 명제를 강화하거나 무너뜨리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이 과정을 통해 1번과 2번 문제는 하나의 긴 사유 과정으로 연결됩니다. 문제 1이 사회문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설계했다면, 문제 2는 그 해결의 철학적 전제를 검증하는 단계입니다. 이때 고려대 논술이 평가하는 것은 찬반의 결론이 아니라 논리의 일관성과 사고의 깊이입니다. 즉 사회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보다 ‘어떤 원리를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입니다. 고려대 논술의 출제 의도는 명확합니다. 이 시험은 정보를 재구성하고 논리를 조립하는 능력을 넘어, 그 논리의 바탕에 깔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단순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그래서 고려대 논술은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사고의 구조를 세우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 구조가 얼마나 타당한지를 검증하게 합니다. 그 결과 학생은 사회를 바라보는 체계와 스스로의 관점을 동시에 성찰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고려대 논술이 묻는 진짜 질문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당신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눈과, 그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