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으로 경고하는 하늘
전한 시대 유학자 동중서가 이데올로기 구체화
"자연의 음양 변화가 가뭄·폭설 등 유발" 주장
자연재해, 윤리 붕괴가 빚은 결과
인간 세계까지 음양의 원리 확장해 재난 설명
"황후가 음의 정치 하면 음의 속성 지진 발생"
"인간은 하늘에 종속된 존재"
군주가 하늘 의지에 反하면 재난 일어나
'천인상관설'로 재해의 정치적 의미 강해져
군주가 천명 받으려면 도덕수양·덕치 필수
전한 시대 유학자 동중서가 이데올로기 구체화
"자연의 음양 변화가 가뭄·폭설 등 유발" 주장
자연재해, 윤리 붕괴가 빚은 결과
인간 세계까지 음양의 원리 확장해 재난 설명
"황후가 음의 정치 하면 음의 속성 지진 발생"
"인간은 하늘에 종속된 존재"
군주가 하늘 의지에 反하면 재난 일어나
'천인상관설'로 재해의 정치적 의미 강해져
군주가 천명 받으려면 도덕수양·덕치 필수

나쁜 짓을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거나 정치 지도자의 잘못을 두고 하늘이 천재지변으로 경고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통상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에 등장하는 전한 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이런 원시적 사고를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구체화한 인물로 평가된다. <사기>에 묘사된 동중서는 자유롭게 비를 내리게도, 그치게도 하는 인물이다. ‘음양의 조화’를 탐구해 비를 부르고, 그치게 하는 ‘도사’와 같은 존재인 것.
동중서는 각종 재이(災異)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음양의 변화’를 꼽았다. 그가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은 <춘추(春秋)>였다. <춘추>가 다루는 242년간의 시기에 등장하는 홍수, 가뭄, 일식, 지진, 혜성, 운석, 서리, 폭설, 해충, 한해와 같은 재이(災異)에 대해 동중서는 그 재난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음양설(陰陽說)에 기초해 설명했다. 그는 “봄과 여름의 주도적인 양기나 가을과 겨울의 주도적인 음기는 하늘(天)에 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고 주장하며 자연 세계에 적용되던 음양의 원리를 인간세계에까지 확장했다.
때마침 <춘추>가 다루는 세계에선 홍수나 가뭄, 유성 등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춘추>는 그 자체로 혼란의 시기를 묘사한 책이다. “<좌전> 소공(昭公) 23년에는 지진을 하늘이 서왕(西王)을 버린 징조로 해석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공양전>에 등장하는 일식, 산사태, 혜성 등의 기록도 이와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자연계의 이상 현상과 정치의 혼란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음양과 함께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오행과 연관 지어 해석함으로써 음양론과 오행론을 인간세계의 윤리를 자연 원리에 근거해 설명하는 길을 텄다. 동중서는 오행의 상생관계를 도덕법칙의 목적으로 전환하면서 왕(양)과 신하(음), 아비(양)와 자식(음), 남편(양)과 아내(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에도 적용했다.
그 결과, 자연재해는 인간세계의 윤리 붕괴가 빚은 결과로 자리매김했다. 예를 들어 황후(皇后) 일족의 ‘음(陰)의 속성’이 정치를 혼란스럽게 했을 경우, 역시 ‘음의 속성’을 지닌 지진이 발생했다는 식이었다. 하늘이 인간의 행동에 왜 감응하는지에 대한 이성적·논리적 설명은 없었지만, 인간은 하늘에 종속된 존재로 그려졌다.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구체화한 것이다.
천인상관설이 힘을 얻으면서 자연현상이 지닌 정치적 의미는 갈수록 커졌다. 군주가 하늘의 의지에 반한 행위를 할 경우, 하늘은 재난을 일으켜 군주를 문책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 나라를 멸망시켜버린다는 ‘재이설(災異說)’로 발전했다.
동중서는 하늘이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때 오로지 군주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렸는지를 고려한다고 봤다. 군주가 실정하면 먼저 비교적 가벼운 재해를 내리고, 그럼에도 고치는 게 없으면 더 강한 징조인 ‘괴이’를 내려 두렵게 하고, 그런 후도 변화가 없으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늘은 작은 규모의 재해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 재난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재이가 발생하고 상서(祥瑞)가 생기는 이유는 오로지 군주의 실정과 선정에 달린 셈이다. 재이는 하늘이 건네는 경고였다.
그리고 각종 재난과 천일상관설을 연결하는 고리는 ‘음양설(陰陽說)’이었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세계도 음양의 기(氣)가 있으며, 인간세계의 음양의 조화가 흐트러지면, 자연계의 음양이 이에 감응해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받는다는 사고였다. 예를 들어 음(陰)의 속성을 지닌 여성이 정치에 관여하면 장마 같은 음의 재이가 발생한다는 식이다. 동중서는 장마가 길어지면 음이 지나치게 강해지도록 하는 요소를 줄여 비를 그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재이설’은 현실 정치에서 유용하면서도 위험한 카드였다. 동중서 자신도 ‘재이설’ 탓에 냉혹한 현실 정치에 휘말리기도 했다. 요동(遼東)에 있던 한(漢) 고조(高祖)의 사당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주보언(主父偃)은 동중서의 책을 훔쳐 무제에게 바쳤다. 동중서의 책에는 재앙 현상을 가지고 조정의 실정을 풍자하고 비방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책으로 동중서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사면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후 “재이(災異)에 관한 학설을 다시 감히 강론하지 않았다”고 <사기>는 전한다.
하지만 재이설은 재해를 빌미로 신하가 군주에게 국가의 위기를 지적하는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천인상관설은 재이를 하늘의 응징으로 지칭하며 악정을 고치는 데 활용됐다. 재이를 해소할 것을 명분으로 황제에게 현 상황의 개선을 요구하는 상표가 이뤄졌다. 동중서에게 하늘은 적극적으로 인간사에 간섭하고 참여하는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백성을 다스리는 황제란 하늘(天)을 본받아야 했다. 군주가 천명을 받기 위해선 도덕 수양과 덕치를 필수조건으로 삼게 됐다. 즉 하늘과 유교 이념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일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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