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미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트럼프도 관세정책을 비롯한 자신의 경제정책 때문에 당장은 미국 내 물가가 올라가고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을 걱정했을 겁니다. 다만, Fed 의장을 ‘늑장쟁이(Mr. too late)’ ‘중대 실패자(a major loser)’라고 공개 비난하고, 해임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압력을 행사한 일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란은 왜 발생하는지, 그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해집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독립성을 지켜온 역사적 사례 등을 4·5면에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정부·정치권, 단기적 경기부양에 '관심'
중앙은행에 압력 넣다가 갈등 폭발 한 나라 경제정책의 양대 축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입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항만·도로 등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간이 공급하기 힘든 재화와 용역을 정부가 직접 나서 생산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나라 전체의 후생을 늘리고 경제발전을 촉진합니다.

통화정책은 통화량이나 금리를 조절해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고용 증대 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는 민간에서 출발한 중앙은행이 도맡는 구조로 정착됐습니다. 중앙은행은 표준화된 은행권을 독점적으로 찍어내도록 국가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민간은행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정부의 은행’이 된 민간은행이 은행 간 결제 지원까지 하면서 ‘은행의 은행’으로 발전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화량 조절,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까지 책임지게 됐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정부의 외곽에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물가’와 ‘고용’ 또는 ‘성장’은 동시에 달성하기 쉽지 않은 거시경제 목표입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돈줄을 조이면 고용과 성장을 기대만큼 이루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장을 촉진하려면 금리인하와 같은 금융완화 정책이 필요한데, 이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위험이 큽니다. 한마디로 서로 충돌하는 관계(trade-off)입니다. 평상시 정부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느냐 긴축하느냐를 놓고 정책적 판단을 하게 되는데, 중앙은행도 정부와 같은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펼치기를 원합니다.
만약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찾아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정부는 물가도 걱정하지만 결국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침체를 방어하는 데 집중할 겁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 금리인상을 밀어붙일 수 있어요. 정부와 중앙은행 간 갈등은 불가피하고, 정부가 중앙은행에 압력을 가할 경우 독립성 시비가 일게 됩니다.
정치적 경기순환, 재정 지배의 폐해
이를 경제이론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정치적 경기순환 이론(Political Business Cycl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호황-침체-불황-회복’을 되풀이하는 것을 경기순환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은 경기순환이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봅니다. 즉 선거를 앞둔 정부와 정치권이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 통화정책을 활용하려는 유인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선거 전 표를 많이 얻기 위해 금리를 내리거나 통화량을 늘리면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선거 이후엔 반대로 풀린 돈을 회수하려고 긴축정책을 폈다가 급격한 경기침체를 맞을 수 있습니다. 정치권은 민생을 위한다는 논리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원하기 일쑤입니다. 기본적으로 금리인상을 싫어합니다. 정부도 한편으론 중장기 경제발전에 힘쓰면서도 정권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보이는 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이라면 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주기적인 정책 개입을 차단해 경제의 불필요한 변동성을 줄여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보수적 중앙은행 이론(Conservative Central Banker Theory)’이 있습니다. 정부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우려하는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를 임명하면 그 사회의 후생이 개선된다는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이론이죠. 물가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둔 보수적 중앙은행 총재로 인해 경제주체들의 기대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실질금리의 변동성도 줄어들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난다는 게 요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 방지 이론’이 있습니다. 재정 지배란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중앙은행에 통화 발행을 압박하고, 그 결과 물가상승이 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재정적자의 화폐화’라고도 합니다. 독립성이 높은 중앙은행이라면 이런 정부의 재정 지배를 막아 물가안정을 유지하고 재정건전성과 금융 안정, 국가신용도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1. 중앙은행이 역사에 등장한 배경과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2.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단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해보자.
3.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의 사례를 찾아 그 폐해를 확인해보자.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돼야 정책효과 생겨
시장흐름 기민하게 대응하는 전문성도 필요 이제 중앙은행의 독립이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다비드 로멜리 교수 등은 작년 논문에서 155개국의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와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아질수록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독립성 지수가 최하위인 나라와 최상위인 나라를 비교해보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약 3.7%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2022년 브라질 중앙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은 직접적으로 소득불평등이나 빈곤 문제를 해결하진 않지만, 인플레이션을 막아 결국은 저소득층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립성은 시장 신뢰 얻는 길
다음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첫 번째는 법률적 독립입니다. 먼저 중앙은행 총재나 이사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임명되도록 법률에 규정하고, 임기도 법률에 못 박는 겁니다. 미국 Fed의 이사는 14년, 의장은 4년의 임기를 보장받습니다. 의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습니다. 법률에 물가안정과 같은 중앙은행의 주된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기준금리나 지급준비율 같은 정책 수단은 중앙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실질적 운영의 독립입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에 예산 편성과 재정 지출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겁니다. 미 Fed는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국채 이자 등 자체 수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정부에 직접 대출을 해주거나 국채를 무조건 인수하도록 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 가운데 2명의 임명 추천권을 정부(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가 갖고 있고, 일부 예산(급여성 경비)에 대해선 정부가 승인권을 쥐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마틴과 그린스펀 의장의 노력
현실에선 제도적 장치가 전부가 아닙니다. 대쪽 같은 중앙은행 총재가 나와 독립성을 지키려 노력하고, 이게 관행으로 굳어져야 합니다. 미국에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1951~1970년 Fed 의장을 지낸 윌리엄 멕체스니 마틴이 대표적입니다. 1965년 당시 린든 B. 존슨 미 대통령은 베트남전쟁과 ‘위대한 사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의장은 “미국 경제는 완전고용 상태여서 금리를 내렸다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며 거꾸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마틴 의장이 나를 배신했다”고 맹비난했지만, 결국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이는 Fed 독립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마틴 의장이 재임하는 동안 미국 경제는 안정적 성장을 이어갔고, 단 두 차례만 단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그는 “Fed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술잔)을 치우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어요. 호황 때 경기과열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1987~2006년 Fed 의장을 맡은 앨런 그린스펀은 시장 흐름을 읽는 탁월한 능력과 기민한 대응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1987년 블랙 먼데이(주가 대폭락) 당시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하며 금융시장의 안정을 지켰고, 2001년 9·11 테러 땐 금리 인하를 통해 위기를 관리해나갔습니다. 물가만 잡는 고금리 정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거죠. 그의 이런 노력은 이후 미국 역사상 최장기 경제호황을 이끌었습니다. NIE 포인트1. 물가안정이 우선일까, 성장과 경기부양이 우선일까?
2. 미국 Fed가 과거 정책에 실책한 사례, 정부 압력에 굴복한 사례도 찾아보자.
3. 한국은행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