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쌕쌕거리다, 오뚝하다’의 어근인 ‘쌕쌕’ ‘오뚝’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새말을 만든다. 그것을 그동안은 ‘쌕쌔기’ ‘오뚜기’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원래 형태가 달라져 그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형태 밝혀 적기’를 적용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는 그 인기 못지않게 우리말 적는 방식에 대한 주목도도 함께 높였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폭삭’과 ‘폭싹’의 관계는 한글맞춤법 가운데 ‘소리 적기’ 방식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따르면, ‘ㄱ, ㄷ’ 같은 폐쇄음 받침 뒤에서는 자음이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나므로 굳이 이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깍뚜기’가 아니라 ‘깍두기’, ‘덥썩’이 아니라 ‘덥석’으로 적는 게 그런 까닭이다. ‘쌕쌔기→쌕쌕이, 오뚜기→오뚝이’로 바꿔하지만 겹쳐 나는 소리에서는 이와 상관없이 같은 글자로 적는다. ‘쌕쌕거리다, 짭짤하다’(쌕색- ×, 짭잘- ×) 같은 게 그 예이다(한글맞춤법 제13항). 그러면 ‘쌕쌕거리다’에서 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말은 ‘쌕쌕이’일까 ‘쌕쌔기’일까?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을 여는 두 가지 열쇠 중 나머지 ‘형태 밝혀 적기’에 관한 규칙을 알아봐야 한다.

우리 맞춤법에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한글맞춤법 제23항). 이는 접미사가 붙어서 새로 만들어진 말의 발음이 달라질 때 원래 형태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다. 가령 ‘쌕쌕거리다, 오뚝하다’의 어근인 ‘쌕쌕’ ‘오뚝’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새말을 만든다. 그것을 그동안은 ‘쌕쌔기’ ‘오뚜기’라고 적었다. 우리말 표기의 근간 중 하나인 ‘소리 적기’ 원칙에 따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원래 형태가 달라져 그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어근의 형태를 고정해 ‘쌕쌔기 X → 쌕쌕이 O, 오뚜기 X → 오뚝이 O’로 표기를 바꾸었다. 맞춤법의 또 하나 열쇠인 ‘형태 밝혀 적기’를 적용했다. 1988년에 고시하고 1989년부터 시행한 개정 ‘한글맞춤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더우기, 일찌기’로 적어오던 것도 이때 ‘더욱이(더욱+이), 일찍이(일찍+이)’로 표기를 바꾸었다. 이 역시 원형을 유지함으로써 그 관련성을 쉽게 드러내고 규칙의 일관성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한글맞춤법 제25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부사에 ‘-이’가 붙어 뜻을 더하는 경우에는 그 부사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로써 발음 습관에 따라 또는 감정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원래 있던 부사에 접미사 ‘-이’가 결합해 새 말을 만드는 경우 이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에 관한 논란이 정리됐다. ‘깡총깡총→깡충깡충’은 모음조화 파괴‘오뚜기 → 오뚝이’로 표기를 변경할 때 하나 더 바뀐 게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오똑하다’ ‘오똑이’로 적던 말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1988년 한글맞춤법 개정 때 함께 고시된 ‘표준어 규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양성 모음이 음성 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 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이 그것이다.(표준어사정원칙 제8항)

이는 우리말 모음조화가 근래 들어 많이 무너지고 지금도 계속 약해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모음조화란 한마디로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을 말한다.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양성모음, 즉 ‘아, 오’일 때는 어미도 양성인 ‘-아’로 적는다는 게 이 규정의 요체다. ‘바뻐’가 아니라 ‘바빠’로 적어야 하는 게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하지만 요즘 모음조화가 파괴되면서 애초 양성모음이던 발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말들이 있다. ‘오뚝이’를 비롯해 ‘깡충깡충, 쌍둥이, 막둥이’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이에 따라 원래 말인 ‘오똑이, 깡총깡총, 쌍동이’는 버렸으므로 지금은 틀린 말이다. ‘오뚝이’는 이 말의 원형인 부사 ‘오똑’도 ‘오뚝’으로 바꾸었다. 그러니 지금은 “오똑 솟은 코”가 아니라 “오뚝 솟은 코”라고 해야 한다. ‘오똑오똑’도 ‘오뚝오뚝’이 표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