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은 ‘두 다리의 안쪽 사이’를 가리키니 우리 몸에서도 가장 깊고 손이 잘 안 가는 곳이다. 이런 의미의 ‘샅’을 겹쳐 씀으로써 속속들이, 즉 깊은 속까지 구석구석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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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국민의힘 의원은 ‘박×× 장관은 스스로 장관에 앞서 여당 의원이라고 선언했다. 정치적 중립 따위는 발에 낀 때 같은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가 난타전을 벌였다. 당시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서로 상대 당 대선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부각하며 대리전을 벌인 것이다. 정치적 공방은 늘 있는 것이고, 우리 관심은 조 의원이 비유하는 말로 인용한 ‘발에 낀 때 같다’란 표현에 있다.“사타구니 깊은 데까지 자세히”란 뜻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말 중에 “발에 낀 때같이 여긴다”라는 게 있다. “발가락에 낀 때”라고 하기도 한다.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몇 가지 변형된 형태로 쓰이는데, 우리 속담에 “발새 티눈만도 못하다”라는 게 그중 하나다. 이는 발가락에 난 귀찮은 티눈만큼도 여기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을 몹시 업신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를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안 여긴다”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이다. ‘때’가 ‘티눈’으로 대체됐다.

그런데 우리말을 좀 아는 사람은 이를 ‘발새에 낀 때’라고 한다. 또는 ‘발샅에 낀 때’라고 한다. ‘발새’는 발가락과 발가락의 사이를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옥화가 당신을 좋아할 줄 아우. 발새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겨요”(김유정, <두꺼비>)라는 용례가 보인다.

‘발샅’ 역시 발가락과 발가락의 사이를 가리킨다. ‘발새’와 같은 말이다. 이때 보이는 ‘샅’이 흥미로운 말이다. 샅은 두 다리의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얼핏 보면 낯선 말인 듯하지만, 우리말에서 이 샅은 ‘샅바’에서부터 ‘사타구니, 샅샅이’ 같은 데에 쓰여 상당히 생활 밀착형으로 자리 잡은 친숙한 말이다. 샅바는 씨름에서, 허리와 다리에 둘러 묶어서 손잡이로 쓰는 천을 말한다. “샅바를 매다/샅바를 잡다/샅바를 쥐다”처럼 쓰인다. ‘샅+바’가 어울려 만들어졌다. ‘바’는 순우리말로, 삼이나 칡 따위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드린 줄을 말한다.

사타구니는 ‘샅’을 낮잡아 부른 말이다. 속담에 “사타구니에 방울 소리가 나도록”이라고 하면 ‘아주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사타구니’는 ‘샅’에 ‘-아구니’가 결합한 말이지만 ‘샅아구니’로 적지 않고 ‘사타구니’로 적는다. 이는 명사 뒤에 ‘-이’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그 명사의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는 규정(한글 맞춤법 제20항)에 따른 것이다. ‘지푸라기(짚+우라기), 끄트머리(끝+으머리), 이파리(잎+아리)’ 등이 모두 그런 규정에 따라 표기가 정해진 말들이다.우리말 속살 알면 다양하게 응용해이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샅샅이’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샅샅이’는 ‘빈틈이 없이 모조리’란 뜻을 나타내는 부사다. ‘속속들이/낱낱이/철저히/구석구석’ 같은 말과 비슷하게 쓰인다. ‘두 다리의 안쪽 사이’를 가리키니 우리 몸에서도 가장 깊고 손이 잘 안 가는 곳이다. 이런 의미의 ‘샅’을 겹쳐 씀으로써 속속들이, 즉 깊은 속까지 구석구석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지금은 일상적인 말이 돼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유래를 알고 보면 좀 민망스러운 말인 셈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비슷하게 쓰이는 ‘낱낱이’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두’란 뜻이다. ‘낱’이 셀 수 있는 물건의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낱개로 팔다”라고 할 때의 ‘낱개’가 그렇게 생긴 말이다. ‘단어’와 같은 말인 ‘낱말’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단독으로 자립해 쓸 수 있는 말을 나타낸다. 한자어 ‘철저(徹底)히’도 비슷한 말이다. ‘깊은 구석구석까지 빈틈이 없이’란 뜻이다. ‘통할 철(徹), 바닥 저(底)’다. ‘밑바닥까지 꿰뚫어 빈틈없이’란 뜻이다. 그래서 ‘철두철미(徹頭徹尾)’라고 하면 ‘머리에서 꼬리까지 통한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란 뜻이다. ‘철천지한(徹天之恨)’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늘을 꿰뚫는 한, 즉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을 이른다.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眼光紙背徹)”란 말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유어로 풀면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고 깊은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말의 속살을 알고 나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