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삶기의 과학
달걀 하나를 삶을 때도 과학이 필요할까. 화학자, 재료과학자, 공학자가 이 질문에 답을 내놨다.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교(University of Naples Federico II) 소속 공동 연구팀은 ‘주기적 조리(periodic cooking)’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달걀 조리법을 지난 2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엔지니어링(Nature Communications Engineering)’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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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연구는 식품의 식감과 영양을 모두 최대한 끌어 올리는 동시에 재료과학과 소재공학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달걀 조리가 까다로운 이유는 흰자와 노른자의 익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흰자는 85℃쯤 돼야 단단히 굳지만, 노른자는 65℃ 정도에서 가장 부드럽게 익는다. 그런데 달걀 껍데기를 깨지 않는 이상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흰자와 노른자 중 하나를 희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예컨대 반숙이나 수비드(밀봉된 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정확히 계산된 온도의 물로 천천히 가열하는 조리법) 방식처럼 저온에서 오래 익히면 노른자는 부드러워지지만 흰자는 설익고, 펄펄 끓는 물에서 삶을 경우 흰자는 잘 익으나 노른자는 퍼석해진다.

연구팀은 흰자와 노른자 모두 최적의 상태로 익히기 위해 달걀 내부의 열전달(온도변화)과 단백질 변성(익는 정도)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수학 모델을 구성했다. 달걀흰자와 노른자는 열전도도·밀도·비열 같은 물성이 다르고, 이 물성들은 온도에 따라 변한다. 연구팀은 이를 고려해 열이 달걀 내부를 통과할 때 단백질이 변성돼 익어가는 속도를 아레니우스 방정식을 이용해 수식화했다. 아레니우스 방정식은 화학반응의 속도가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나타낸다. 연구팀은 이 모델을 통해 뜨거운 물과 찬물을 번갈아 사용하는 ‘주기적 조리’ 방법이 흰자와 노른자 모두를 최적의 상태로 익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기적 조리 방법에서는 달걀을 끓는 물(100℃)에 2분, 찬물(30℃)에 2분씩 번갈아가며 총 8번 담근다. 이때 흰자는 뜨거운 물에 담긴 시간 동안 표면부터 빠르게 온도가 올라가면서 점차 단단해진다. 반면 노른자는 외부로부터 열이 천천히 전도되기 때문에 뜨거운 물과 찬물 교체를 반복해도 급격한 온도변화 없이 내부 온도가 대략 67℃로 유지된다. 뜨거운 물과 찬물이 달걀 안에서 서로 다른 온도 환경을 만들어 흰자와 노른자 각각에 최적의 익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통해 주기적 조리 방법이 잘 알려진 조리법인 삶기, 반숙, 수비드보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기적 조리 방법으로 삶은 달걀의 흰자는 단단하게, 노른자는 크리미하게 익어 맛과 식감 모두 뛰어났다. 또한 단백질 변성 정도를 분석한 결과, 흰자는 충분히 응고되면서도 노른자의 부드러운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수소 핵자기공명 분광 분석기(1H-NMR)’와 ‘질량 분석기’로 살펴보니 주기적 조리 방법으로 익힌 달걀노른자에는 건강에 좋은 폴리페놀과 아미노산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과학자들이 달걀 삶는 방법을 이렇게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좀 더 맛있는 조리법을 찾는 것을 넘어 다양한 온도 패턴에서 물질을 다루는 기술을 찾기 위해서다. 달걀 속 흰자와 노른자처럼 구조와 물성이 다른 물질을 한 번에 서로 다른 상태로 가공할 수 있으면 식품을 넘어 소재 결정화(Crystallization, 액체나 용액 상태의 물질이 특정 구조를 가진 고체 결정으로 변하는 현상)나 큐어링(Curing, 고분자 재료를 열처리하거나 화학적 반응을 통해 경화시키는 과정) 같은 공업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식탁에 오르는 달걀 하나가 과학자들에게는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연구팀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달걀 삶기를 통해 과학적 설계와 수학적 예측이 일상생활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주기적 조리 방법은 단순한 요리법을 넘어 향후 식품 제조, 결정화 공정, 소재 구조화 같은 분야에까지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억해주세요
[과학과 놀자] 뜨거운 물, 찬물 번갈아 담그면 맛·영양 다 잡아
달걀흰자와 노른자가 최적으로 익는 온도는 다르다. 달걀을 깨지 않고 서로 다른 온도에서 익히려면 새로운 조리법이 필요하다. 최근 이탈리아 연구팀은 수학 모델링을 활용해 달걀을 뜨거운 물과 찬물에 번갈아 담그는 ‘주기적 조리’ 방법을 고안했다. 이에 따라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동시에 최적의 상태로 익히는 데 성공했으며, 실험을 통해 맛, 식감, 영양 보존 효과가 다른 조리법에 비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이 방법이 식품 조리뿐 아니라 소재 결정화나 큐어링 같은 공업적인 영역에서도 응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우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