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적기’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다. ‘형태 밝혀 적기’는 반대로 소리야 어찌 나든 글자 본래의 형태를 살려 적는다는 것이다. ‘소리적기’의 요체는 어떤 단어가 ‘까닭 없이’ 된소리로 나면 그대로 적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지난 3월 선보인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며 연일 화제다. 드라마 주요 무대인 제주와, 제목으로 쓰인 제주 방언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가 표준어를 쓰는 이들에겐 ‘완전히 속았네요’쯤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제주 방언에서 ‘폭싹’은 ‘매우, 몹시’란 뜻이다. ‘속았수다’의 기본형인 ‘속다’는 ‘수고하다’라는 의미다. 어미처럼 쓰인 ‘-수다’는 표준어 ‘-어요’에 해당한다. 이 말은 함남 지방 사투리로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니 드라마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정도의 뜻이다. ‘ㄱ, ㅂ’ 받침 뒤에선 된소리로 적지 않아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폭싹’이란 표현이다. 우리말의 소리 적기, 그중에서도 된소리 적기에 관한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안 나오고,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폭삭’의 비표준어로 나온다.

그런데 표준어 ‘폭삭’을 우리는 “폭삭 망했다” “폭삭 늙었다” 식으로 어떤 상태가 아주 심한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쓴다. 이는 ‘보통보다 훨씬 더, 더할 수 없이 심하게’란 뜻을 담은 ‘매우, 몹시, 아주’ 같은 부사와 의미 자질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중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에 쓰인 ‘폭싹’을 ‘폭삭’으로 바꿔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표준어에선 ‘폭삭’만이 바른 표기다. ‘폭싹’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글맞춤법의 된소리 표기 규정이 적용된다. 우리말 맞춤법에 들어가는 기본 열쇠는 2개다. 하나는 ‘소리 적기’고, 다른 하나는 ‘형태 밝혀 적기’다. ‘소리 적기’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다. ‘형태 밝혀 적기’는 반대로 소리야 어찌 나든 글자 본래의 형태를 살려 적는다는 것이다. ‘소리 적기’의 요체는 어떤 단어가 ‘까닭 없이’ 된소리로 나면 그대로 적는다는 것이다.

“△(약삭빠른/약싹빠른) 사람. △(법석/법썩)을 피우다. △(짭짤하게/짭잘)하게 재미를 보다.” 헷갈리기 쉬운 말들이지만 요령을 알면 바른 표기를 찾을 수 있다. 답부터 말하면 ‘약삭빠른’ ‘법석’ ‘짭짤하게’가 맞는 표기다. 우선 ‘약삭빠르다’ ‘법석’ 따위는 발음이 [약싹] [법썩]으로 된소리로 나는데도 예사소리로 적은 게 특이할 것이다. 이는 “ㄱ, ㅂ 받침 뒤에서는 된소리로 나더라도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이다(한글 맞춤법 제5항). 된소리 적기, 원칙 알고 응용해야이를 그냥 외울 게 아니라 원리를 알아두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 원리는 ‘ㄱ, ㄷ’이 받침으로 쓰일 때는 소리가 폐쇄되므로 뒤따르는 음절이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 발음으로 확인해보면 훨씬 쉽다. ① 깍두기, 왁자지껄, 떡갈나무, 색시, 북적거리다, 쑥덕거리다. ② 몹시, 덥석, 맵시, 납작하다, 밉살스럽다, 집적거리다. 업신여기다.

①과 ② 각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①은 ‘ㄱ’ 받침이, ② ‘ㅂ’ 받침이 들어가는 단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받침으로 인해 소리가 폐쇄되므로 굳이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그러면 ‘짭짤하다’나 ‘쓱싹쓱싹’ 같은 것은 왜 된소리로 적는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우선 위에서 살핀 ‘ㄱ, ㅂ 받침 뒤’의 원칙을 적용하면 이들은 ‘짭잘하다, 쓱삭쓱삭’이라 해야 맞을 것 같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규정이 적용된다. “한 단어 안에서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부분은 같은 글자로 적는다”는 게 그것이다(한글맞춤법 제13항 ‘겹쳐 나는 소리’에 관한 규정). 이에 따라 ‘쌕쌕, 싹싹하다, 씩씩하다, 쌉쌀하다, 씁쓸하다, 씁쓰레하다, 딱따구리, 찝찔하다’처럼 적는다. 이들은 모두 ‘ㄱ, ㅂ’ 받침 뒤지만 같은 소리가 거듭 나는 말이라 같은 글자로 적는 것이다. 이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폭싹’이 왜 우리 맞춤법에선 허용되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드라마 제목으로서의 ‘폭싹’은 고유한 상표와 같은 것이므로 이를 두고 맞춤법 시비를 따질 대상은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말 된소리 적기 원칙을 살펴보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