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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세계의 수도’ 미국 워싱턴 D.C.가 요즘 ‘통곡의 도시’가 됐다고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연방 공무원 240만 명 가운데 벌써 10만 명이 해고됐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특정 정당의 대선 승리와 공무원 채용이 어느 정도 연계돼 있어 공무원의 해고가 우리나라보다 쉽습니다. 이 일을 책임진 테슬라 최고경영자이자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는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라고 다그치고, 다른 부처 장관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부 혁신 시도는 2024 회계연도에만 1조8330억 달러(약 2660조원)를 기록한 재정적자 문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공무원 감축 등을 통해 연방정부 조직을 혁신하지 않으면 나라 살림을 정상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겁니다. 미국의 정부 효율화 시도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영국이 중앙정부 공무원 1만 명, 홍콩은 공무원의 5% 이상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는군요. 우리나라도 전체 공무원 수 122만여 명 가운데 문재인 정부 시절에만 13만 명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공공부문 효율화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공무원 수를 줄였다고 해서 혁신이 성공했다고 곧바로 평가내리기 어려워요. 공공부문은 왜 비대해지는 경향이 있는지, 공공서비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양을 왜 못 맞추는지,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낮은 생산성이 정부 몸집 키우는 원인
'표'만 좇는 정치인들의 선심정책도 한몫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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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혁 문제를 들여다보려면 정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적인 분석을 곁들인 설명을 찾아보면 18세기 영국의 애덤 스미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당시 정부와 동의어였던 ‘왕’의 역할을 세 가지로 들었습니다. 국가의 안전보장, 법질서의 유지,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제공이었죠. 미국의 공공경제학자 리처드 머스그레이브는 자원의 배분, 소득의 분배, 경제 안정화 등을 꼽았습니다. 같은 공공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은 경제체제의 기본 틀 짜기, 공공재 공급을 정부의 핵심 기능이라고 봤습니다.

정부부문이 앞세우는 가치

분배, 공공 등의 용어에서 정부는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중요 가치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또한 특정 사회계층과 분야에 경제적 부와 자원이 쏠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공정’과 ‘형평’이란 가치를 중시하는 겁니다. 물론 정부 조직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효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효율이 공익과 공정, 형평에 훨씬 앞서는 가치는 아닙니다. 효율성 제고에만 초점을 맞춰 정부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문제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바그너 법칙’을 아시나요

정부 조직의 규모는 역사적·경험적으로 항상 커져왔습니다. 20세기 초 세계 각국 정부의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이게 1960년대 중반 30%로 늘어나더니 1980년대 이후엔 40% 이상으로 크게 확대됐습니다.

정부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처음 인식한 연구자는 19세기 독일 경제학자인 아돌프 바그너였습니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일본 등의 정부부문이 국민소득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커지는 현상을 그의 이름을 따 ‘바그너 법칙’이라 불렀습니다. 바그너는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려고 정부가 사회에 대한 개입 범위를 점점 넓혔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교육·문화·보건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높은 소득탄력성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소득이 증가하면 공공서비스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미국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은 민간에 비해 낮은 정부부문의 생산성에서 바그너 법칙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정부부문은 노동집약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경우 생산성보다 인건비가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습니다.

지대추구 행위도 원인

정치학자와 공공경제학자들의 설명은 시야를 좀 더 넓혀줍니다. 먼저 정치인의 득표 극대화 추구와 중위투표자(중위소득자) 정리입니다. 소득 기준으로 국민의 한가운데인 중위(중간)소득자는 평균소득보다 낮은 소득을 얻습니다. 이들은 선거 시기가 되면 소득재분배 목소리를 높입니다. 정치인들은 득표를 의식해 이들의 요구에 기반한 각종 소득분배 정책과 선심성 복지정책을 늘리는 선택을 합니다. 뷰캐넌은 이처럼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정부부문의 과도한 팽창을 유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성경에 나오는 바다 괴물에 빗대 ‘리바이어던 가설’이라 부릅니다.

다음으로 관료 사회의 인력·예산·하위조직 등은 업무량과 무관하게 점차 비대해진다는 ‘파킨슨 법칙’도 이런 연구의 결과입니다. 조직과 예산을 극대화하는 관료 사회의 습성에 주목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각종 이익집단의 지대(rent)추구 행위도 정부 지출을 증대시킵니다. 경제학에선 공급이 제한된 생산요소를 통해 공급자가 얻는 이익을 ‘경제적 지대’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택시 운수 사업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일종의 생산요소)을 지키기 위해 ‘타다’와 같은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행위가 지대추구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가 늘어나면 정부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갈등을 줄인다며 관련 규제를 늘리고, 자연스럽게 정부 조직도 팽창할 수밖에 없습니다.NIE 포인트1. 공공부문에서 공익과 형평, 그리고 효율의 가치가 충돌한 사례를 찾아보자.

2. 공공경제학 또는 공공선택이론이 무엇이고, 어떤 의의를 갖는지 공부해보자.

3. 민주주의 제도는 시장의 효율성과 왜 상충되는 경우가 많은지 생각해보자.금융위기·코로나 때 커졌던 정부 역할
안정 찾으면 '효율' 높이는 게 바람직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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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문이 여러 이유에서 규모가 커져온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정부 조직이 팽창하는 것을 당연시해야 할지, 어느 정도 제어를 하면서 효율을 기하는 게 옳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는 정부의 복지지출을 어느 정도로 늘리는 게 맞는지,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지, 무역자유화는 어느 정도로 보장해야 할지 등의 판단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이른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논쟁이죠. 큰 정부론은 ‘시장실패→정부주도론→증세’ 등의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작은 정부론은 ‘정부실패→시장주도론→감세’라는 가치를 지향하게 되죠.

같은 근거, 다른 결론

이는 이념적 기반이 달라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즉 정부 규모가 팽창하는 문제는 좌파·우파의 시각에서 완전히 정반대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적 경제학자의 주장은 아서 피구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저서 <후생경제학>에서 경제를 시장 기능에만 맡겨두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재화와 용역이 생산되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거죠. 존 갤브레이스는 기업의 지나친 상품광고는 소비자의 판단을 그르치게 해 국민이 공공재보다 사적 재화를 더 선호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이로 인해 정부가 공급해야 할 각종 서비스가 방치돼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앤서니 다운스는 특정 공공사업에 대해 국민은 조세부담을 확실하게 느끼지만, 사업으로 인한 편익은 체감하기 어려워 상당수 공공사업이 중도 하차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규모는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특정 공공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조세의 형태로 국민 모두가 부담하지만, 사업에 따른 혜택은 특정 이해관계자들이 집중적으로 받게 됩니다. 이 경우 이해집단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업을 원하고, 다수결로 사업 여부를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선 공공부문이 필요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갤브레이스나 뷰캐넌 같은 경제학자들은 ‘불완전한 정보’라는 같은 근거에서 출발하고도 결론은 정반대에 도달해 흥미를 끕니다. 정치학과 경제학, 행정학을 아우르는 공공경제학의 연구 방법이나 접근법은 이처럼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미국의 ‘작은 정부, 큰 시장’ 추구

정부의 시장 개입 크기를 따지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라는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케인스학파와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경제학파는 시장 기능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 라는 철학의 문제에서 갈리기 때문이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에서 ‘작은 정부, 큰 시장’이란 가치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지금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 개혁도 그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차원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발언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개입으로 반(反)시장 정책이 늘어나고 폐해가 커질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시장 효율을 무시하고 정의·평등·도덕 등 가치에 매몰되면 인기영합주의에 휩쓸리기 쉽다. 착한 정부 아래에서도 복지 수혜자들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이들은 자신의 수혜 자격이 정당하며, 아직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가난이 ‘청구권력’이 되는 사회, 국가에 대한 의존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창의와 활력이 생길 리 없다.” 프리드먼은 정부 역할과 지출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경제정책이라고 역설했어요. “미국 연방정부에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것이다. 선의를 가진 착한 정부도 일부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는 ‘나쁜 시장’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공중보건 조치, 사회적 약자 지원 등을 위해 정부의 역할과 지출 등이 급속도로 확대됐습니다. 이제는 균형추를 맞추는 차원에서 프리드먼의 강조점, 즉 정부부문의 효율화에 주목해보면 어떨까요?NIE 포인트1. '큰 정부론'과 '작은 정부론'의 주장을 정리해 친구들 앞에서 설명해보자.

2. 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을 공부해보고, 그의 명언도 찾아보자.

3. 우리나라에선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부문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