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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김하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요즘 시사·경제 용어로 많이 등장하는 것 중에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식이나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과 채권, 금(金), 달러 같은 안전자산은 경기 상황에 따라 가격이 반대로 오르내립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높은 수익을 쫓기 때문에 위험자산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오르죠. 반면 경기가 나쁘면 사람들이 위험을 꺼리게 되어 안전자산의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간에 역(逆)의 상관관계(trade-off)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각국에서 그야말로 모든 자산의 가격이 함께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생글생글은 작년 3월 18일 자(제840호)에서 ‘에브리싱 랠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습니다. 새롭고도 기이한 현상이어서 ‘오래가진 않겠지’라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게 벌써 1년 반 넘게 지속되고,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 증시 대표 지수인 S&P500은 올 들어 약 13% 상승했는데, 금값도 50% 넘게 뛰었어요. 두 자산이 같은 날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경우가 올해만 벌써 일곱 번째입니다. 근래 50년 가까이 없던 일이죠. 이에 생글생글은 세계경제 역사에 남을 기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인공지능(AI) 산업의 초호황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4·5면에서 다뤄보겠습니다.주식·코인·원자재에 금까지 2년째 상승
유동성 홍수, 화폐가치 하락이 기현상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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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안전자산의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위험자산(risky asset)은 경기나 시장 상황에 따라 가치(가격)가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자산을 말합니다.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산업용 원자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 순 있지만, 동시에 가격이 급락해 손실을 끼칠 가능성도 큽니다. 이에 반해 안전자산(riskless asset)은 가치의 움직임이 안정적인 게 특징입니다. 경기가 불확실하거나 시장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정도 가치가 유지됩니다. 현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유동성도 뛰어납니다. 금, 미국 달러와 국채, 예금 등이 대표적입니다.

‘포트폴리오 이론’ 쓸모 없어졌나?

이들 자산은 경기에 따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때는 사람들이 고수익을 쫓기 때문에 위험자산의 가격이 오르고 안전자산 가격은 떨어집니다. 반대의 경우, 즉 경기 침체나 하락기에는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되면서 안전자산이 상승하고 위험자산은 하락합니다. 경제정책에도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려고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 증시가 호전될 것으로 예상한 주식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가는 오르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듭니다. 그래서 주식 가격과 금·채권 등의 가격은 서로 어긋나는 게 정상입니다.

자산을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나누는 것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안정적 수익을 올리려는 투자전략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즉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자산을 투자 바구니에 나눠 담으면 그만큼 투자 손실의 위험을 줄이고 일정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상한 흐름이 나타났어요. 주식,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과 금 등의 안전자산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기 시작한 겁니다. 앞서 주가와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비트코인도 2024년 연초부터 지금까지 대략 145% 올라 개당 10만8000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금은 1979년처럼, 주식은 1999년처럼 동시에 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여기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원자잿값도 덩달아 뛰고 있어요.

정치가 경제를 압도한 것도 원인

전통 경제이론도 주가와 금값의 동반 상승이라는 기현상에 대해 설명을 내놓습니다. 예를 들어,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이 예상되자 ‘화폐(달러)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겁니다. ‘탈(脫)화폐 거래(debasement trade)’라는 말이 그래서 등장했어요. 또 미국이 일으킨 관세전쟁과 보호무역주의가 각국이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시대를 열며 언제 경제위기가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번졌습니다. 이 때문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게 된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세계 전체에 돈이 넘치는 ‘유동성 홍수’와 인공지능(AI)발 대규모 투자가 자산시장 활황세를 불렀습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액의 유동성은 여전히 세계경제 시스템 주변을 맴돌고 있으며, 주식과 금을 포함한 많은 자산을 사들이고 있죠. Fed가 경기 하강 위험을 막기 위해 올 들어 기준금리를 인하 기조로 바꾼 것도 에브리싱 랠리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습니다. 저금리가 온갖 자산 가격을 올려놓는 원인 제공자가 된 겁니다. 이런 금융완화 정책으로 인해 세계 각국 은행들의 대출 총합은 34조7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Fed의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한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정치가 경제를 이끌고 압도하는 현실’이 에브리싱 랠리를 부추겼다는 겁니다.NIE 포인트1.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에 대해 공부해보자.

2. 탈화폐 거래의 개념을 좀 더 알아보자.

3. 에브리싱 랠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부추긴 효과도 있을까?'모든 거품 결국 꺼진다' 변치 않는 진리
AI 시대, 닷컴 버블의 전철 밟을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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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설명을 잘 따라오고 있지요? 막대한 돈의 힘 외에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낙관론도 에브리싱 랠리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산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전망에 빅테크들이 AI와 관련한 투자지출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는 겁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 네 곳은 작년 2240억 달러(전년 대비 51% 증가), 올해는 2800억 달러(약 400조 원)어치를 AI 투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신생기업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금융회사를 ‘벤처캐피털’이라고 하는데요,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수익성이 확인되지 않은 AI 관련 스타트업 10곳에 올 들어서만 1610억 달러(약 230조원)를 투입했습니다.

‘위험=고성장’ 인식하는 AI 시대

투자자들은 AI 혁신으로 인해 미래의 ‘투자위험’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고(高)위험 자산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 때문에 경기가 둔화하는 국면에서도 온갖 자산에 매수세가 몰리고 가격이 함께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어딘가 과도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AI 투자와 관련한 거품(버블) 발생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AI 가속기를 만드는 엔비디아는 핵심 부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공급 부족을 배경으로 높은 공급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익성도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급망 애로가 풀리고 GPU 가격이 내려간다면 엔비디아의 수익성 또한 떨어질 겁니다.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등은 AI 랠리가 1990년대 초 닷컴 버블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모든 전문가가 그렇게 보는 건 아닙니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아직 AI 랠리를 버블로 볼 단계는 아니며, AI 시장 내 경쟁이 심화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AI 투자 열기가 과도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AI 기술 자체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브리싱 랠리는 ‘뉴노멀’일까

여기서 1990년대 닷컴 버블 때와 지금의 AI 랠리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두 시기 모두 혁신 기술에 대한 과한 기대와 투자 유입으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실제 수익성보다 높게 평가됐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비꼬아서 ‘기술 낭만주의’가 횡행했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반면 이런 기업들의 수익모델과 장기적 성장 경로는 예나 지금이나 불투명합니다.

차이점도 있습니다. 닷컴 버블 때는 인터넷 기술의 초기 단계인 데 반해, 지금의 AI 기술은 이미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 중입니다. 또 과거 닷컴 기업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현재 AI 기업 중 일부는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닷컴 기업들은 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산업 중심으로 성장했으나, 지금의 AI 기술은 제조업·금융업·서비스업 등 광범위한 산업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AI 산업이 닷컴 버블 때보다 훨씬 더 정교한 기술 기반 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투자 과열과 일부 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고 지적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에브리싱 랠리는 버블경제의 전조인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분명히 전통 경제이론에는 맞지 않는 과열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뉴노멀(New Normal)’이란 말을 들어보셨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세계경제의 새로운 현상을 뜻합니다. 저성장, 저금리, 고소비, 높은 실업률, 규제 강화, 미국 경제 역할의 축소 등이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겁니다. 에브리싱 랠리가 과거 버블의 전철을 밟지 않고, 2020년대의 ‘뉴노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NIE 포인트1. AI 투자가 과연 버블인지에 대해 토론해보자.

2. 닷컴 버블이 일던 1990년대 초반의 세계경제를 살펴보자.

3. ‘뉴노멀’이란 용어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