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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일주일 뒤면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막을 올립니다. 분야별 장관 회의 등에 이어 하이라이트인 정상회의가 오는 31일, 11월 1일 이틀간 예정돼 있어요. 21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APEC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의 61%, 전체 교역량의 절반을 점하는 세계 최대 지역 협력체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세계사의 중심이 됐다는 말이 실감 나죠?

우리나라는 2005년 부산 APEC 회의 개최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APEC을 엽니다. 이후 2010년 G20 정상회의, 2024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등을 개최했지만, 중요 정상회의를 우리나라에 많이 유치하진 못했어요. 이번 회의는 미국·중국 등 강대국은 물론 신흥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또한 각국 정상과 대표단의 방문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북한은 최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해 북핵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역내 경제협력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어떤 외교력을 펼칠지 관심이 쏠립니다. 이어지는 4·5면에서 국제협의체의 변화 양상, 아태 지역 협력의 중요성과 이번 APEC의 의의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평화와 경제협력 위해 활약한 국제협의체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위협 요소로 등장
사진=AP 연합뉴스
사진=AP 연합뉴스
흔히 국제기구 또는 국제협의체라고 하면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들 기구는 설립 목적과 법적 성격, 운영 방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국제질서 안정과 경제협력

먼저 ‘정부간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 IGO)’가 있습니다. 유엔과 WTO,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주권국가 간 조약에 의해 설립되며, 국제법상의 법인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법인격이란 사람이 아닌 단체나 조직에도 사람과 같은 인격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법률적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죠. 정부간기구에서 의결한 내용과 규범은 회원국이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지닙니다.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정치·군사적 목적의 IGO도 있습니다. ‘집단방위체제’나 ‘집단안보체제’로 불리는 기구입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아세안지역포럼(ARF), 걸프협력회의(GCC, 중동 6개 왕국의 정치·군사협력기구) 등이 이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토론과 조율, 합의에 중점을 두는 느슨한 협력 플랫폼도 있습니다. 이를 ‘국제협의체(International Consultative Body)’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법인격은 없으며, 참가국들이 공동성명을 내는 식으로 협력합니다. 공동성명의 구속력은 크지 않아요. APEC은 G20와 함께 여기에 포함됩니다.

다자주의 전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국제기구들은 크게 나눠 국제질서 안정 또는 경제협력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주창자들은 이를 강대국 간 세력 균형, 패권 유지의 수단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후 신생 독립국이 많아지고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조금은 분산되면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협력체)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 같은 새로운 협의체도 등장합니다. 서구 중심의 전통적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협의체들이죠.

국제기구는 대부분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지향합니다.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지만, 사실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요? 여러 나라가 무역이나 환경, 안보 등 국제적 현안에서 어떤 합의를 이루려면 체계적인 절차와 공통 규범이 필요합니다. 이런 협력 방식을 ‘다자주의’라고 합니다. 이는 혼자서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실행하는 일방주의(unilateralism)와는 반대되는 개념이죠. 일방주의는 미국이 기후변화협정인 교토의정서나 국제형사재판소(ICC) 참여를 거부하거나, 단독으로 군사행동을 추진한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 아래 자국 이익 중심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자주의 국제질서에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죠.

진영 대립 만든 일방주의

미국의 일방주의는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기구들이 더 단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두 기구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한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목적과 성격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SCO는 지역 안보 협력과 대테러 공동 대응에 무게중심이 있고, 브릭스는 경제개발과 협력, 글로벌 경제질서의 다변화를 추구합니다. 브릭스는 브릭스신개발은행, 비상외환준비금협정, 무역 및 투자 협력 등을 통해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외연을 크게 넓히는 중입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반서방 성향의 나라들이 가입하고, 군사·안보협력을 시도하는 게 목격되고 있죠. 이런 움직임은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가 부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국제질서는 이 같은 국제기구의 변화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대표적인 국제협의체가 무엇이며,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알아보자.

2. 다자주의와 일방주의의 개념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자.

3. 일방주의가 확산하면 세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APEC은 아태지역 번영, 갈등 해소의 축
韓외교력 시험대…중심 역할 할지 주목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위키피디아 제공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위키피디아 제공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여러 국제협의체 가운데 어느 정도 위상을 가졌을까요? 앞서 얘기했듯, APEC은 ‘세계 최대 지역경제 협력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과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도 특징이죠. 이른바 ‘경계’를 넘어 다양성 속 협력과 포용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장관급 회의가 처음 개최된 이후 정상회의로 확대된 APEC은 올해로 33차를 맞습니다. 이제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과 함께 글로벌 경제질서를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의제 넓혀가는 APEC

APEC은 그동안 역내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무역자유화, 개발 격차 해소에 주력해왔습니다. 최근엔 지속가능 성장, 디지털경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의제로 협력 범위를 확장하고 있어요. 여기에 새로운 역할을 하나 더 요청받고 있습니다. 바로 국제정치적 균형과 전략 대화의 공간이란 점입니다. 원래 APEC은 경제협력체이지요. 그런데 주요 참여국이 미국과 중국이다 보니, 양국 간 정치·군사적 갈등이나 역내 안보 위기 상황을 경제적 대화를 매개로 풀어갈 여지가 생겨났습니다. 재점화된 미·중 무역 갈등이 해소되는 계기가 과연 이번 APEC 회의에서 마련될지 주목됩니다.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엔 강대국 간 세력 다툼 구조 때문에 이미 많은 정치·군사 협력체가 존재합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모임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이어 미국과 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군사·안보 협력체인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의 오커스(AUKUS)도 등장했습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대만해협, 남중국해, 인도양 등에 걸쳐 군사적 패권 경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참여 여부도 중요 이슈로 떠오르곤 합니다. 이들 기구의 태동 배경과 역할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APEC 각국은 이런 대결과 긴장 상황을 경제협력과 대화를 통해 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소국 외교력 시험 무대

경주 APEC 행사는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강소국이라고 들어보셨죠? 정치·군사적 강대국은 아니지만, 경제와 국제 협력에서 중심이 되는 나라로서 이른바 이니셔티브를 쥐는 국가를 말합니다. 경주 APEC 회의의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인데요, 한국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중심 국가로 우뚝 설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 규칙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중 갈등을 중재하는 외교력까지 펼쳐 보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아직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만약 미·중 정상회담이 이번 APEC에서 개최된다면 세계 최대 경제 대국 간 직접적 소통으로 무역 갈등, 기술 경쟁, 안보 문제 등 여러 긴장 관계가 완화될 수 있을 겁니다. 대화와 신뢰 구축을 통한 갈등 완화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효과도 가져옵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측면에서 외교력을 선보이고, 다자외교를 주도하는 좋은 경험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번 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개최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지역균형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경주엔 전 세계 지도자와 기자단, 보안 요원 등 수만 명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행사 기간 중 숙박업, 식음료업, 관광시설 이용 증가로 지역 내 관광산업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요즘 K-컬처가 전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는데요, 경주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 도시인 만큼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NIE 포인트 1. 국제협의체 회의에서 주최국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2. 과거 APEC 회의가 세계경제 안정에 기여한 사례를 찾아보자.

3.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면 APEC의 위상도 흔들리지 않을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