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는 현실언어를 반영한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남남끼리의 사이에 정답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도 ‘이모’를 썼다. 이 말엔 비하나 차별보다는 외려 친근감이 담겨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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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상한 가정부>라는 SBS 월화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 4회에 다소 이례적 대사가 등장한다. 시장 아주머니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한 아이가 “어, 가정부 아줌마다”라고 말하자 그 엄마가 “가정부 아니랬지. 가사도우미라니까?”라고 고쳐준다. <수상한 가정부>는 제목에 사용한 ‘가정부’라는 말 때문에 방영 전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로부터 비하적 표현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방송사에서 이를 받아들여 제목 대신 드라마 대사를 통해 정정 방송을 한 셈이다.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현실 언어와 규범 언어 간 세력 싸움지난 시절에 ‘식모’(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라고 불리던 직업이 있었다. 산업화가 이뤄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 말이 파출부, 가정부, 가사도우미를 거쳐 요즘은 가사관리사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해 말 ‘이모’ 사태가 터졌다.

△‘필리핀 이모’ 100명 입국 … 논란 딛고 순항할까?(2024년 8월) △신문윤리위, ‘필리핀 이모’ 표현 쓴 언론 11곳에 ‘주의’ 조치(2024년 11월) △서울 외엔 수요 없는 ‘필리핀 이모님’, 이달 시범 사업 종료 … 확대 가능할까.(2025년 2월)

초고령사회 진입과 맞벌이 부부 증가에 따라 가사 노동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 대책으로 지난해 8월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펼쳤다. 국내 언론에선 초기 보도와 최근 보도에 미묘한 표현상 차이가 드러난다. ‘언어의 세력 다툼’인 셈이다.

‘필리핀 이모’는 현실 언어를 반영한 표현이다. 석 달 뒤 신문윤리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이 표현을 쓴 언론사 11곳에 ‘주의’ 조치를 했다. ‘필리핀 이모’가 외국인 여성 근로자를 비하 또는 차별하는 표현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신문윤리위는 “출신 국가 이름을 붙여 ‘필리핀 이모’ 식으로 부르는 것은 특정 국가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 합리적·논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2월 시범 사업 종료를 앞두고 최근 이들에 관한 보도가 다시 늘고 있다. 그런데 ‘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현실 언어에선 ‘필리핀 이모’가 여전히 통용된다.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높임을 뜻하는 접미사 ‘-님’을 덧붙인다는 것 정도다. ‘필리핀 이모’가 차별이나 비하 표현으로 비친다는 지적에 ‘-님’ 자를 붙여 피해가는 모양새다.‘이모’는 비하보다 친근감 담긴 표현이모는 본래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남남 사이에서 정답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도 이모를 썼다. 그만큼 이 말에는 비하나 차별보다 외려 친근감이 담겨 있다. 이모가 애초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에도 서비스업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마법의 단어가 된 데에는 이런 언어적 배경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이미 이 용법이 올라 있다.

또 하나 놓쳐선 안 될 부분은 언어 경쟁력에서 ‘필리핀 이모’가 더 앞서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보다 글자 수가 적고, 알아보기 쉽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것이 일상적 호칭으로서 친근함까지 더해 공식 용어인 ‘가사관리사’를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가사관리사는 형태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언어적 맛깔스러움은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궁극적으로 무엇이 살아남을지는 언중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필리핀 이모’와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현실 언어와 규범 언어의 간극을 보여준다. 현실 언어는 언어의 자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말이다. 규범 언어는 정부 기관이나 시민단체 등 특정 세력에서 주도하고 생성하는 하향식·인위적 계도어다.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언어적 세력 다툼이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당선자가 당선인으로, 노숙자가 노숙인으로 바뀐 데는 ‘-자(者)’와 ‘-인(人)’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바탕이 됐다. 이 같은 인식은 자연발생적 언중의 선택이라기보다 학계나 시민단체 등 우리말 관련 집단의 인식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설계되고 안배된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