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는 현실언어를 반영한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남남끼리의 사이에 정답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도 ‘이모’를 썼다. 이 말엔 비하나 차별보다는 외려 친근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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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 100명 입국 … 논란 딛고 순항할까?(2024년 8월) △신문윤리위, ‘필리핀 이모’ 표현 쓴 언론 11곳에 ‘주의’ 조치(2024년 11월) △서울 외엔 수요 없는 ‘필리핀 이모님’, 이달 시범 사업 종료 … 확대 가능할까.(2025년 2월)
초고령사회 진입과 맞벌이 부부 증가에 따라 가사 노동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 대책으로 지난해 8월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펼쳤다. 국내 언론에선 초기 보도와 최근 보도에 미묘한 표현상 차이가 드러난다. ‘언어의 세력 다툼’인 셈이다.
‘필리핀 이모’는 현실 언어를 반영한 표현이다. 석 달 뒤 신문윤리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이 표현을 쓴 언론사 11곳에 ‘주의’ 조치를 했다. ‘필리핀 이모’가 외국인 여성 근로자를 비하 또는 차별하는 표현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신문윤리위는 “출신 국가 이름을 붙여 ‘필리핀 이모’ 식으로 부르는 것은 특정 국가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 합리적·논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2월 시범 사업 종료를 앞두고 최근 이들에 관한 보도가 다시 늘고 있다. 그런데 ‘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현실 언어에선 ‘필리핀 이모’가 여전히 통용된다.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높임을 뜻하는 접미사 ‘-님’을 덧붙인다는 것 정도다. ‘필리핀 이모’가 차별이나 비하 표현으로 비친다는 지적에 ‘-님’ 자를 붙여 피해가는 모양새다.‘이모’는 비하보다 친근감 담긴 표현이모는 본래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남남 사이에서 정답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도 이모를 썼다. 그만큼 이 말에는 비하나 차별보다 외려 친근감이 담겨 있다. 이모가 애초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에도 서비스업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마법의 단어가 된 데에는 이런 언어적 배경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이미 이 용법이 올라 있다.
또 하나 놓쳐선 안 될 부분은 언어 경쟁력에서 ‘필리핀 이모’가 더 앞서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보다 글자 수가 적고, 알아보기 쉽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것이 일상적 호칭으로서 친근함까지 더해 공식 용어인 ‘가사관리사’를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가사관리사는 형태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언어적 맛깔스러움은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궁극적으로 무엇이 살아남을지는 언중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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