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지난해 12월 3일 갑작스러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해제 의결과 대통령 탄핵 소추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거대 야당 주도로 탄핵 소추되면서 정부가 온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가 이른바 ‘관세전쟁’을 시작하고,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국익 외교를 전개하는 사이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만 목을 매고 있는 실정입니다.일각에선 대통령의 인권도 중요한 만큼 충분한 변론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때엔 헌법재판소가 소추안 접수부터 선고 때까지 91일이 걸렸는데, 그에 비해 재판 진행이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변론 장면이 TV로 전해지면서 헌법재판소의 역할, 헌법재판의 의미와 절차 등에 관심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학생들로선 대법원이라는 최고재판소가 있는데 왜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이 생겨났는지 궁금할 수 있죠. 물론 대법원에서 헌법 관련 재판을 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한 번쯤 공부하며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죠? 이어지는 4면과 5면에서 헌법재판소의 유래와 제도별 유형, 우리나라의 도입 과정, 헌재의 기능과 일반 법원과의 차이점 등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헌법과 국민 기본권 지키기 위한 헌법재판
대법원 아닌 독립기관이 맡는 나라 많아요
![한경DB](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AA.39510138.1.jpg)
2차대전 후 본격화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의 개념은 미국에서 처음 확립됐습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1803년 한 판결을 통해 사법부가 위헌법률심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을 밝힙니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될 경우, 법원이 그 법률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공표한 것이죠. 이후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법학자 한스 켈젠의 논문 <재판에 의한 헌법의 보장>이 크게 주목받았고, 그의 제안에 따라 1920년 오스트리아에서 기존 법원과 독립된 최초의 헌법재판소가 창설됩니다. 2차대전 뒤엔 나치 등의 인권 탄압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같은 형태의 헌법재판소가 설립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 20세기 말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도 잇따라 헌법재판소를 설치합니다.
영미법계 국가는 대법원이 담당
헌법재판소나 헌법위원회 같은 독립기관을 별도로 세워 헌법재판을 담당하게 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기존 법원이 이 기능을 맡게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각 나라의 역사적·법적 전통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온 겁니다. 독립기관형은 위의 설명처럼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나라에서 먼저 도입했습니다. 법전을 바탕으로 하는 성문법 체계를 지닌 나라, 일명 대륙법계 국가들이 주로 헌법재판소를 설치했죠. 이런 법 전통을 따른 한국이나 중남미 신생 독립국가들도 독립기관으로 헌법재판소를 설치했습니다.
기존 법원이 헌법재판을 하는 경우는 유형의 법률 없이 판례 등에 의존하는 불문법 체계, 즉 영미법계 국가들이 중심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 그런 나라입니다. 대륙법계를 따르는 일본이 헌법재판을 대법원인 최고재판소에 맡긴 것은 이례적입니다. 이는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로 보입니다.
독립기관형은 어떤 국가기관으로부터도 독립적이며, 전문성을 갖고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습니다. 프랑스의 헌법위원회는 법관 출신이 아닌 정치인도 위원으로 선임하는 전통을 갖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따로 헌법재판소를 두지 않는 나라는 일반 법원이 특정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헌법재판을 합니다. 대법원과 같은 최고법원이 최종적인 헌법 해석 권한을 갖습니다. 하나의 사법부 체계 내에서 헌법재판도 다루기 때문에 법적 판단에서 좀 더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재, 1988년 설립
우리나라의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기 때문에 법원은 원칙적으로 모든 법적 분쟁을 심판합니다. 단 예외 조항이 두 가지 있죠. 헌법과 관련된 분쟁 중 일부를 헌법재판소가 담당하고,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 심사와 징계처분은 국회가 맡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 제도는 헌법 제정 이후 헌법위원회형, 헌법재판소형, 대법원형 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1960년 제2공화국 때 헌법재판소를 도입한 적이 있지만, 5·16 군사쿠데타 등으로 헌재가 제 기능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의 헌법재판소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입니다. 당시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폐지 및 긴급명령권 신설 등 중요한 변화가 생겼죠. 헌재가 창설된 것도 이런 ‘87체제’의 역사적 산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NIE포인트1. 헌법재판소와 관련한 헌법 규정을 찾아보자.
2.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는 어떤 특징을 갖고 어떻게 구분하는지 공부해보자.
3. 세계 각국의 헌법재판소 제도를 비교해보자. 모든 국가기관이 따라야 하는 헌재 결정
호주제 위헌, 통진당 해산…파급효과 컸죠
![뉴스1](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AA.39510159.1.jpg)
헌재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에 효력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와는 독립된 기관인데요, 몇 가지 점에서 일반 법원과 차이를 보입니다. 헌재는 헌법에 대한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판하는 곳입니다. 세 번까지 법적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3심제로 운영하는 법원과 다르죠. 다음으로 관할 범위입니다. 법원은 민·형사, 행정 등 일반적 법률 다툼을 다루는 데 반해, 헌재는 헌법에 관련된 분쟁을 다룹니다. 그러다 보니 판단 기준도 달라집니다. 법원은 일반 법률을 근거로 판단합니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관련 법규를 적용해 분쟁을 해결하죠. 헌재는 헌법이 기준입니다. 법률이나 국가기관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살핍니다. 마지막으로 판결의 효력입니다. 법원의 판결은 원칙적으로 해당 소송의 당사자에게만 효력을 미칩니다. 반면 헌재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의 행위를 구속합니다.
정치적 요소는 항상 논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그 기능을 본격화한 것은 1988년 이후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많이 내려 국민 생활이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1997년 동성동본 결혼 금지 위헌 결정으로 동성동본이라도 결혼할 수 있게 됐죠. 2005년엔 호주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해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됐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가 어머니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치적 사건도 헌재 결정의 파장이 컸어요. 헌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기각, 같은 해 신행정수도 이전 사건도 기각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는 ‘서울이 관습법상의 수도’라는 유명한 결정이 내려졌어요. 2014년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도 내렸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의 구성과 여러 결정을 놓고 갈등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 자체가 정치적 주장과 대립 문제를 헌법의 규범적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해결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죠. 하나의 정치적 가치 형성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겨납니다. 하나는 헌재가 그럴 만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느냐입니다.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구성에 관여하는 헌재가 국민이 직접 뽑아 민주적 정당성이 강력한 국회 또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통제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죠.
이는 헌재 결정의 구속력 문제로 이어집니다. 모든 국가기관은 헌재의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위헌 결정이 난 법률을 국회가 방치하고, 대법원이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행정부도 마찬가지죠. 헌재 결정 자체에 정치적 요소가 없지 않기에 국가기관은 헌재 결정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국회가 추천한 헌재 재판관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은 것을 놓고 헌재가 헌법 위반이라고 결정하면 과연 권한대행이 따를지 지켜볼 일입니다. 결국 헌재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소해나갈 때 자신의 민주적 정당성은 물론, 존립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NIE포인트1. 헌법재판이 일반 법원의 재판과 다른 점을 다시 정리해보자.
2. 헌법재판소의 구성에서 권력분립 원칙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3. 합헌·위헌 외에 ‘한정 합헌’ ‘일부 위헌’ ‘헌법 불합치’ 등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