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우리나라 경제가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395원(1998년 기준)이었습니다. 지금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미국과의 관세협상 고비를 넘겼고, 수출도 잘돼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환율은 국가 위기 상황 때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기업은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원·부자재를 수입·가공해 수출을 하는 국내 기업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상 환율을 토대로 경영하는 기업은 환(換)손실을 걱정해야 하고, 해외 유학 중인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늘어나는 부담에 한숨을 내쉽니다. 미국에 갈 일이 없다면 원·달러 환율이 높아도 문제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원·엔 환율도 함께 상승합니다. 젊은이들이 이웃 나라 일본으로 많이 여행을 가는데요, 최근 부쩍 높아진 환율 때문에 친구 선물 사기도 팍팍해졌어요.
지금의 고환율은 구조적 원인에 의한 것이어서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달러당 1500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또한 고환율 시대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이어지는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수출입·고용·물가·증시에 직접적 영향
고환율 일상화땐 경제생활 크게 바뀌죠
다양한 경로의 환율 효과
환율이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크게 수출입, 고용, 물가, 증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면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강화돼 수출기업에 유리해집니다. 똑같은 수출 상품의 가격이 달러로 표시할 때 이전보다 싸지기 때문입니다. 또 수출기업 입장에선 달러로 거둔 수입을 환전할 때 더 많은 원화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 한국 제품의 해외 가격이 비싸져 수출이 줄고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환율상승으로 수입 원자재와 중간재 가격이 오르면 국내 업체의 최종 생산비용이 늘어나 수익 개선 효과가 상쇄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이미 그렇게 글로벌 공급망이 짜인 기업이 많아 환율과 수출의 연관성이 이전보다 약화됐다는 실증 사례가 많습니다. 고용과 관련해선 수출기업이 환율의 혜택을 볼 경우 고용이 늘어나고, 반대라면 고용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 제품의 가격이 원화 기준으로 오르게 되고, 수입품 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원유·곡물 등 필수 원자재를 수입하는 경우, 환율 변동의 영향이 소비자물가에 그대로 전가될 수 있습니다. 환율이 1%p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는 0.04~0.13%p 오른다는 분석 결과도 있습니다. 환율이 하락하면 반대로 수입물가가 내려가고,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됩니다.
환율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환율상승이 예상된다면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한국 주식에서 30% 수익을 거뒀더라도 환율이 그만큼 올라버리면 수익금을 달러로 바꿔 해외로 송금할 때 수익이 제로(0)가 될 수 있습니다. 환율하락, 즉 원화 강세가 예상될 때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리합니다.
소비문화까지 바꿔놓아
환율은 경제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높은 수준의 고(高)환율은 경제에 주름살이 잡히게 합니다. 만약 수입물가가 크게 상승한다면 물가상승 압력이 1년 내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자연히 내수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은 외화표시채권의 이자를 달러로 지불해야 합니다. 고환율 시대엔 이 부담이 커지고, 기업의 수익률을 낮추게 됩니다.
우리나라 경제사 속에 극단적 예는 두 번 정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1997년 12월 1900원대까지 치솟으며 원화 가치는 반토막 났습니다. 고환율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증시에서 투자금을 빼기 바빴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원화 환율이 달러당 930원대에서 1570원대로 급등했습니다. 당시에도 증시 대폭락, 경기침체 가속화 등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금융시장도 불안했고, 미래의 경제생활이 나아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어 소비와 투자활동도 크게 위축됐습니다. 실업 증가는 두말할 나위 없었죠.
해외 유학과 해외여행도 크게 줄었어요. 체재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유학을 중도 포기하고 귀국한 학생이 많았죠. 흔히 말하는 ‘3고(高)’, 즉 고환율·고물가·고금리가 나타나 민생은 더욱 어려워지고,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됐습니다. 한편으론 꼭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소비문화가 정착되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란 말도 유행했어요. 고환율은 이렇게 우리 삶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NIE 포인트 1. 환율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체험을 공유해보자.
2. 다른 나라의 고환율 경험과 그 피해를 찾아보자.
3. 그렇다면 고정환율제(페그제)가 나은지 토론해보자. 개인·기업 해외투자 급증이 환율 끌어올려
저성장까지 겹쳐 원화 약세 장기화 가능성
구매력평가설 아시나요?
환율의 결정요인은 여러 가설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외환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국제수지, 물가 및 금리 수준, 투자자 기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죠.
환율은 자국 화폐와 외국 화폐 간 교환비율, 즉 가격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 원리가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달러를 사고자 하는 수요가 많으면 달러 가치가 높아지고 원·달러 환율은 그에 따라 상승하게 됩니다. 환율은 국제수지의 균형을 고려해 결정된다는 국제수지 접근법으로 이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그만큼 외환(예,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자국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게 됩니다. 반대로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면 국내로 공급되는 외환의 양이 늘어 자국 화폐가치는 높아지고 환율은 떨어지게 됩니다.
환율은 장기적으로 보면 각국의 물가수준 차이를 반영합니다. 이름하여 구매력평가설(PPP, Purchasing Power Parity)입니다. 이는 동일한 상품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돼야 한다는 일물일가(一物一價) 법칙을 전제로 합니다. 똑같은 물건이 나라마다 다른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국가별 물가수준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두 나라 사이의 물가수준 차이가 크다면, 거기에 맞게 환율이 변동하게 된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각국의 금리 차이 때문에 환율이 변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높으면 한국으로 달러가 몰리고 원화강세, 환율하락이 나타날 수 있죠.
자본수지 악화가 원인
그렇다면 지금 고환율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달 26일 기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는 연 3.75~4.00%로, 우리나라의 2.50%보다 높습니다. 2022년 중반부터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진 게 환율상승을 촉발했을 수 있습니다.
최근의 급격한 환율상승에는 다른 요인이 더 있습니다. 바로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증권, 특히 미국 주식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지에 해외투자 계획이 많은 기업도 해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도 자본수지가 악화돼 환율이 올라가는 겁니다. 이런 흐름은 단기간에 방향을 돌려세우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론 우리 경제의 저성장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체력에 대한 평가가 나빠지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씀씀이 줄어들지 관심
주목해야 할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원화 약세는 일반적으로 달러 강세를 뜻하는데, 지금 달러는 다른 통화 대비 약세입니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100을 넘으면 강세, 100 이하이면 약세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러인덱스는 올 초 109 정도에서 지난 9월 97까지 떨어졌다가 조금 회복되며 100선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 선포와 함께 달러 약세를 추구한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지금까지는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달러 약세 속에 원화는 더 약세를 보여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두 번째는 고환율 시기엔 달러를 써야 하는 해외 지출이 줄어드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지난 3분기 내국인의 해외 카드 사용 실적을 보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9%, 전 분기에 비해선 7.3% 증가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환율을 상수(常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지, 해외투자 수익금이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가져와 해외 씀씀이가 커진 것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NIE 포인트 1. ‘구매력 평가설’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자.
2. 각국 통화가 거래되는 외환시장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보자.
3. 고환율에도 해외 지출이 아직 줄지 않는 이유가 무얼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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