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63) 통화·재정 트릴레마
지난달 11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연 3.25%로 0.25%포인트 인하했습니다. 2021년 8월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지 3년 2개월 만에 ‘피벗’을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은행은 이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사항을 고려했죠. 왜 그런 것일까요?기준금리가 만병통치약일까?
지난 8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시장에서는 한국은행도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지요. 하지만 한국은행은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금리를 동결했죠. 물가는 안정되었지만, 급증하는 가계부채로 금리인하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지요. 하반기 경기가 불투명하기에 경기 부양 측면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길 바랐죠.(163) 통화·재정 트릴레마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다양한 경제 상황을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물가는 상승하고 가계와 기업은 빚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하면서 부채가 늘어나죠. 반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빚 부담이 늘어 금융 불안이 심화하지요. 그래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라는 하나의 정책 수단으로 물가안정·경기부양·금융안정 모두 얻을 수 없는 ‘통화 트릴레마’에 직면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도 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며 기준금리로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 이유도 이러한 상황 때문이죠.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통화정책만이 아니라 재정정책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국민은 세금을 적게 내면서 높은 복지수준을 누리고, 정부는 국가채무가 적으면 매우 좋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낮은 조세부담’ ‘낮은 국가채무’ ‘높은 복지수준’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를 ‘재정 트릴레마’라 부르죠. 낮은 조세부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복지수준을 낮추거나 국가채무를 늘려야 합니다. 낮은 국가채무를 달성하려면 조세부담을 높이거나 복지수준을 낮춰야 하지요. 높은 복지수준을 위해서는 조세부담을 높이거나 국가채무를 늘려야 하지요. 결국, 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현실을 보더라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 복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세수입을 늘리거나 국가채무를 늘려야 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늘리는 증세 정책은 국민에게 인기가 없지요. 그래서 국채를 발행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지만 국가채무는 늘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복지지출은 ‘비가역적’ 특징을 지닙니다.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국민의 반발로 없애거나 줄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 현재의 복지수준을 유지하거나 늘려야 하기에 나머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기에 좋은 정책 목표로만 달성된 세상은 유토피아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