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은 대표적인 공공언어 영역에 있는 말이다. 문법의 보고 또는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외려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다. 이를 보고 익혀 쓰는 법학도를 비롯해 일반인들에게도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때 ‘다루어지거나 여겨지다’를 눈여겨봐야 한다. 여기에 힌트가 있기 때문이다. ‘-어지다’는 믿어지다, 느껴지다, 따뜻해지다 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하게 됨’ 또는 ‘~상태로 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 ‘우선하다’는 자동사, 즉 목적어가 필요 없는 동사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앞에서 본 것처럼 ‘우선시하다’는 다른 것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즉 목적어를 동반하는 타동사다.
“한국 외교에 대한 깊은 반성과 국익을 우선하는 단호한 자세가 절실하다.” 이제 이런 문장에 쓰인 ‘우선하는’이 틀린 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우선하다’는 자동사라 ‘무엇이 (~에) 우선하다’ 꼴로 쓰인다. ‘~을 우선하다’가 아니다. “중세시대는 교권이 왕권에 우선하던 사회였다”, “혈연이나 지연보다 능력이 우선하는 사회” 같은 게 그런 문장들이다. 타동사인 ‘우선시하다’는 ‘(무엇)을 우선시하다’ 꼴로 쓰인다.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그 예다. 그러니 헌법 제46조 2항은 시급히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시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로 바꿔야 한다. ‘~을 지속하다’ ‘~이 지속되다’ 구별해야헌법은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를 다룬 각종 근본 법규의 총합이며, 모든 법률의 체계적 기초가 되는 최고 법규다. 그런 헌법 조문에 문법적 오류가 있다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헌법뿐 아니라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우리 법조문에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너무 많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김세중 박사가 펴낸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는 우리 법조문이 안고 있는 문법적 오류를 조목조목 짚어냈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민법 제162조 1항) 민법의 채권 소멸시효 규정은 딱히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말이다. 그런데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이상하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면 ‘(무엇)을 완성하다’라고 하지 ‘(무엇)이 완성하다’라고는 절대 하지 않는다. 타동사인 ‘완성하다’를 자동사인 양 잘못 쓴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류가 민법은 물론 상법과 형사소송법에 숱하게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