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간처럼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던 지적 활동을 AI가 수행하고 많은 일자리도 뺏아갈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청소년 여러분과 부모님들까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AI와의 경쟁이 그나마 덜할 직업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여기서 한국은행이 두 차례에 걸쳐 발간한 AI 발전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관한 보고서가 눈길을 끕니다. 국내 최고의 경제 싱크 탱크이기도 한 한은의 분석이란 점 때문입니다.
한은은 먼저 ‘어떤 일자리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가’에 초점을 맞춰 소분류된 직업을 살폈어요. 이를 통해 철도 기관사, 화학·재료공학 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등은 물론, 의사·회계사·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란 결론을 얻습니다. 이달 초엔 “협동·설득·공감 능력 등 사회적 능력을 갖춘 인력이 노동시장에서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AI 기술이 인간의 여러 인지능력을 보완해준다면 사람은 AI가 할 수 없는 협업이나 소통, 종합적인 문제해결 등에 집중하는 게 맞습니다. 요즘 채용시장에서 MBTI라는 성격유형 조사까지 참고한다는 얘기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AI 시대에 어떤 직업과 직무, 그리고 업무 능력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지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의사·회계사·변호사 등 전문직, AI 영향 불가피
협동·소통·공감능력 필요로 하는 일자리 유망 한국은행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노동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경제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란 점에 주목합니다. 한은은 여러 경제적인 분석 도구를 활용해 직업의 미래를 조망하고 있어 더욱 신뢰감을 주고 흥미도 불러일으킵니다. 보고서 두 편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대면접촉 많은 직업, 살아남을 것
한은이 작년 11월에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는 ‘직업별 AI 노출지수’란 개념이 나옵니다. 이는 현재의 AI 기술로 수행 가능한 업무가 해당 직업 업무의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요, 노출도가 높으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지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직업의 직무 내용 설명서인지와 AI 관련 특허의 제목이 얼마나 중복되는지 파악합니다. 이후 직무별 가중치를 감안해 AI 노출지수를 계산합니다. 보고서는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상세한 직업까지 이 지수를 산출한 결과, 향후 20년간 국내 일자리 가운데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AI 노출지수 상위 20%)가 총 341만 개로 전체 일자리의 12%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일반의(의사), 철도·전동차 기관사, 화학·금속재료공학 기술자, 발전장치·상하수도 처리장치 조작원 등이 가장 높은 AI 노출지수를 보였습니다. 전문의(상위 7%), 회계사·자산운용가(상위 19%), 변호사(상위 21%) 같은 전문직도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는 대용량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는 대표적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직자, 대학교수, 가수·성악가 등은 AI 노출지수가 하위 10% 내였고 기자, 개인 생활 서비스 종사원 등은 하위 20% 이내였습니다. 이들 직업은 대면접촉 등 인간관계 형성이 필수적이어서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낮은 겁니다.
산업별로는 정보통신업, 전문 과학기술, 제조업 등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서 AI 노출지수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와 달리 숙박음식업, 도소매업, 예술·스포츠·여가 등 대면 서비스업은 노출지수가 낮았습니다. 산업용 로봇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기술이 단순·반복적인 일자리를 대체한 것과 달리, AI는 인지(분석)적인 성격의 업무를 대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 직종의 인기가 높았는데요, AI가 이들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한다면 직업 선택의 기준을 이제는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행은 작년 보고서 끝부분에 “AI 시대에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기술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겠지만, 소프트 스킬에 대한 수요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AI는 인지적 업무까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 팀워크·의사소통 능력과 같은 소프트 스킬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달 초 나온 한은의 AI 보고서(‘노동시장에서 사회적 능력의 중요성 증가’)는 이 부분에 주목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사회적 기술
‘사회적 기술(능력)’이란 다른 사람과 원활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는 협동·협상·설득·공감 능력을 말합니다. 이런 기술이 많이 필요한 일자리로는 작가, 연극·영화·영상 전문가, 사회복지 종사자, 전문 서비스(연구·교육·문화·예술 등) 종사자, 약사, 대학교수·교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은 분석 결과, 사회적 기술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일자리의 비중은 최근 14년간(2008~2022년) 7%포인트 늘어나 56%에 달했습니다. 한편 사회적 기술과 달리 인지적(수학적) 기술과 능력이 중요한 생명·자연과학 관련 시험원, 회계·경리·통계 관련 사무원 등의 일자리 비중도 증가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50%에서 55%로 상대적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어요.
요약해보면 동료·고객과의 대화 등 반복적이지 않은 업무는 직관·유연성 같은 암묵적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어 AI가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진로와 직업이 이런 성격을 갖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 바랍니다.연구개발·기획·영업분야 AI로 대체 힘들어
여러 직무 경험해 문제해결 능력 키워야죠 인공지능(AI)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과 업무능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면, 이젠 일의 내용과 성격에 따른 분류인 직무별로는 어떤지 보도록 하죠. 2021년 잡코리아 설문(복수 응답 기준)에선 AI 대체 가능성이 큰 직무로 생산·제조(42.6%), 텔레마케팅(39.9%), 재무·회계(35.5%), 정보기술(IT) 개발(20.4%), 인사·총무(19.2%)가 꼽혔습니다. 반면 연구개발·설계(6.1%), 영업(6.4%), 전략·기획(7.1%), 디자인(7.5%), 영업지원·관리(8.9%) 등은 대체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업무를 기획하고 의사결정하는 일, 고객과 시장의 요구사항을 도출하고 대응하는 성격의 직무는 AI가 처리하기 만만치 않다는 얘기로 보입니다.
인간은 복잡한 문제에 집중
다음으로 펀드매니저와 기자라는 직업의 사례를 통해 AI가 어떤 직무를 맡을 수 있고, 직장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지 보겠습니다. 2020년에 나온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보고서(‘AI 시대의 전문직 직업 연구’)에 이런 내용이 많이 담겼습니다. 먼저, 금융 및 자산 운용은 정형화된 데이터가 많아 AI의 활용성이 높은 대표적 분야입니다. AI가 다루는 데이터의 양과 질이 크게 개선된다면 AI가 훨씬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부각될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AI의 수익률을 통해 검증된다면 이후 펀드매니저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AI를 포함한 정량적 투자 수단을 잘 활용하는 펀드매니저는 계속 인기를 누리겠죠. 또 AI 활용이 늘어나고 관련한 인적·물적 투자가 확대되면 금융산업의 인력 구조에서 IT 관련 인력의 비중이 높아질 것입니다.
기자직에서도 AI는 단순 발생 건에 대한 기사 작성은 가능할지 몰라도 기자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취재는 AI가 커버하기 힘듭니다. 이게 기자 경쟁력의 핵심이고, 기자들의 고유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AI가 생산하는 기사에 활용되는 데이터의 정확성 및 품질 관리, 오류 수정, AI가 만든 기사의 선별 등 새로운 업무가 생겨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은 기술혁신과 디지털전환에 앞서가야 한다는 압력을 많이 받습니다. 방법은 생각이 유연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이런 자질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분야와 직무를 경험해야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죠. 그래서 기업은 특정 기술보다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앞으로 더 원하게 될 겁니다.
2017년 자료이긴 하지만, 당시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제조업과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을 대상으로 미래 일자리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연구한 결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기업들은 구성원의 직무 역량 가운데 ‘업무처리 능력’과 ‘기술적 능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미래엔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 것으로 봤습니다. AI가 단순 직무를 보조하는 범위가 넓어지면 사람은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 그런 문제는 대부분 고객과의 접점에서 생겨나거나, 부서나 직무 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용시장에서도 이런 능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국내 100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순위에서도 2008년엔 전문성이 2위, 소통·협력이 5위였는데, 작년엔 소통·협력이 3위, 전문성이 6위로 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맞는 역량 키워야
AI는 인간의 정보처리와 의사결정 방식을 따라 배우며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인간과 AI가 잘 협력하면 인간은 판단·창의·감성 등이 필요한 고차원적 직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제공하는 노동 서비스의 품질과 성과가 크게 향상될 겁니다. AI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사회 전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시민의 자유와 복지를 개선할지는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개인은 AI 시대에 꼭 필요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는 AI발 일자리 감소에 대응해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만들고 인력을 재교육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나라 경제도 잘 풀려나갈 수 있습니다.NIE 포인트1. 대면접촉이 많은 직업에서는 AI가 활약할 가능성이 아예 없을까?
2. 어떤 직무를 담당하느냐도 중요해졌다. 자신의 특장점에 맞는 직무를 파악해보자.
3. 인간이 AI의 보조를 받으며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이게 가능할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