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김세중 박사는 근래 몇 년을 민법을 비롯해 법조문의 우리말 오류에 천착해 있는 사람이다. 애초 민법(1118조)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았는데, 무려 340개 조에서 발견됐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민법 제2조 1항의 규정이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여럿 있다. 이 말이 드러내는 가치도 그중 하나다.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한 명으로서 상대방의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용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줄여서 ‘신의칙(信義則)’이라고도 한다. ‘신의에 좇아’는 우리말에 없는 표현그런데 이 조항의 문장, 사실은 어색하다. 어째서일까? 동사를 잘못 썼기 때문이다. ‘좇다’는 ‘(무언가를) 따르다’란 뜻이다. ‘의견을 좇다/관례를 좇다/유언을 좇다’처럼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다. 그런데 신의칙을 담은 문장에선 ‘신의를 좇아’가 아니라 ‘신의에 좇아’로 돼 있다. 우리는 타동사를 ‘밥을 먹다’ ‘노래를 부르다’처럼 쓰지 ‘밥에 먹다’ ‘노래에 부르다’라고는 절대 안 한다. 그러니 ‘신의를 좇아’라고 고쳐 써야 한다. 굳이 문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너무나 명백한 오류다.우리 민법에 누구나 알 만한 이런 오류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민법이 1958년에 제정 공포됐으니 만 66년 되도록 잘못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셈이다. 제정 당시 일본 민법을 베껴 기계적으로 옮기다 보니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이 됐다는 게 국어학자 김세중 박사의 설명이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김 박사는 근래 몇 년을 민법을 비롯해 법조문의 우리말 오류에 천착해 있는 사람이다. 애초 민법(1118조)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았는데, 무려 340개 조에서 발견됐다. 그는 2022년 이런 내용을 지적한 <민법의 비문>을 펴낸 데 이어, 지난 2월 범위를 6법으로 넓혀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펴냈다. ‘의식을 회복하다’-‘의식이 회복되다’그가 찾아낸 법조문의 수다한 잘못은 우리 일상에서 또는 글쓰기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민 대표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였는가?’입니다.” 지난달 초미의 관심을 끈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의 갈등을 전한 한 언론 기사문에도 어색한 표현이 눈에 띈다. ‘임무에 위배하는’이 그것이다. ‘위배하다’는 ‘법률 따위를 지키지 않고 어기다’란 뜻이다. “교통법규를 위배했다”에서 드러나듯이 타동사다. 그러니 ‘임무를 위배하는’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앞서 살핀 민법 신의칙 ‘신의에 좇아’와 같은 오류다.
글쓰기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별하지 못해 오는 잘못은 문장상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음 문장의 오류도 타동사 용법을 응용한 사례다. “집값 낙폭 둔화와 거래량 증가 등 반등 지표가 나타난 만큼 내년부터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는 ‘회복하다’가 문제다. 이 말은 타동사다. ‘국권을/건강을/의식을 회복하다’ 형태로 쓰인다. 예문처럼 부동산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부동산 시장이 거래를 회복하다” 식으로 쓸 수 있다.
이를 자동사처럼 써서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회복하다’는 타동사이므로 ‘부동산 시장’을 주어로 하면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다’라고 해야 어법에 맞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회복하다’를 자칫 자동사인 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란 용례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걸 두고 ‘회복하다’가 자동사로도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때 쓰인 보조사 ‘-는’은 주격이 아니라 목적격으로 쓰인 보조사다. 즉 ‘한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가 본래 문형이다. 이를 보조사 ‘-는’을 써서 변형한 문장인 셈이다.
좋은 글은 어법을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어법은 모국어 화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의 표현 방식’이다. 어법을 벗어나면 글이 어색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세련되지 못한, 품격을 갖추지 못한 표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