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힘 (4)

능동과 피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주어다. 주어(주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능동과 피동이 갈린다. 의사는 '처방하고', 환자는 '처방받는다'. 피동문은 주어가 남의 동작이나 행동을 입게 됨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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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기소된 오재원에게 두산 선수 8명이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준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경찰이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에게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준 혐의를 받는 두산 베어스 소속 등 야구 선수 8명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전 국가대표 야구 선수를 둘러싼 충격적인 마약 사건 소식이 지난 4월 내내 이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리 처방’ 기사가 연일 전해지면서 우리말의 ‘비정상적’ 사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능동과 피동 구별 안 해 ‘우리말 왜곡’독자들은 “두산 선수 8명이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준 사실”, “대리 처방해준 혐의”, 이런 대목에서 뭔가 탁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대리 처방’해줬다는 게 무슨 뜻일까? 진료 시 ‘처방’은 의사가 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대목이 이상한 것이다. 사건 초기에 많은 언론보도에서 ‘후배 선수들이 대리 처방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실은 “대리 처방받아준” 것이다. 이를 ‘처방하다’로 해 우리말 용법을 왜곡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방해물로 작용했다. 커뮤니케이션 실패의 단서가 된 것이다.

‘처방하다’는 능동사고 ‘처방받다’는 피동사다. 우리말에서는 능동사를 피동사로 쓰고 싶을 때 ‘-이/-히/-리/-기’ 같은 피동접미사를 붙인다. 또는 ‘-하다’ 동사류는 ‘-하다’ 부분을 ‘-받다/-되다/-당하다’ 같은 피동접미사로 바꿔 피동사를 만들기도 한다. ‘처방하다’와 ‘처방받다’는 한국인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쓰임새를 구별하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에서는 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능동과 피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주어다. 주어(주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능동과 피동이 갈린다. 의사는 ‘처방하고’, 환자는 ‘처방받는다’. 피동문은 주어가 남의 동작이나 행동을 입게 됨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이런 구별이 특히 왜 중요하냐 하면 일상에서 늘 쓰는 말 중에 요즘 그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임대료 및 난방비 지원.” 이 문장에서 문제되는 곳은 어디일까? ‘임대료(賃貸料)’는 남에게 물건이나 건물 따위를 빌려준 대가로 받는 돈을 말한다. 즉 물건이나 건물 주인이 받는 돈이 ‘임대료’다. 영세 소상공인은 ‘임차료’를 낸다. ‘임차료(賃借料)’는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대가로 내는 돈이다.빌려주는 쪽, 빌리는 쪽 모두 ‘대출자’‘임대’와 ‘임차’는 명백히 다른 말이다. 임대의 ‘대(貸)’가 빌려준다는 뜻이고, 임차의 ‘차(借)’가 (남에게) 빌리다, 꾸다라는 말이다. 이들을 두루 ‘임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임대’는 주인이 쓰는 말이고, ‘임차’는 빌리는 사람이 주체가 된 말이다. 그러니 동네 상가 입구에 점포를 내놓으면서 써붙인 “임대인 구함”이란 안내문은 잘못된 것이다. “임차인 구함”이라 해야 옳은 말이다. 사무실을 월세로 빌려 쓰는 사람이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말을 아주 잘못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임대료 체납’이란 표현도 어불성설이다. ‘임대료’는 체납할 수 없다. ‘임차료’를 체납할 수 있을 뿐이다.

‘대출’과 ‘차입’은 서로 다른 말이다. 하지만 요즘 두 말을 구별 없이 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같은 오류가 자주 나온다. 아니 사실은 더 나쁜 경우라 할 만하다. 말의 용법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우리말의 정교함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나 알듯이 ‘대출’은 ‘돈이나 물건 등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1991년 <금성판 국어대사전>을 비롯해 1999년 나온 종이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그렇게 풀던 말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그런데 이후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은 대출의 풀이를 ‘돈이나 물건 따위를 빌려주거나 빌림’으로 바꿨다. 종이 사전의 ‘대출’ 의미에 ‘빌리는 것’을 추가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빌려주는 것도 대출이고, 빌리는 것도 대출로 통하게 됐다. 예전엔 대출에 대응해서 ‘차입(돈이나 물건을 빌림)’이란 말을 구별해 썼다. 이제는 ‘대출’이 ‘차입’의 의미까지 다 먹은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은행도 대출자고, 돈을 꿔가는 사람도 대출자다. 말을 정교하게, 이치에 맞게 써야 하는데 우리말의 그런 점이 자꾸 훼손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