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48) 신(新) 넛크래커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면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지적하는 표현은 있었습니다.‘가성비’ 한국의 위기 극복과 발전
1970년대 후반 중국은 개혁·개방을 선언하면서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갔습니다. 한국이 전쟁 이후 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수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인 것처럼 말이지요. 이때만 해도 한국은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의 산업을 고도화하며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국제시장에서 인정받아 국가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호황은 지속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997년 10월 해외의 한 컨설팅 업체가 한국은 가격경쟁력에서는 중국에 쫓기고, 기술경쟁력은 일본에 밀리는 ‘넛크래커’ 형국이라고 표현했지요. 여기서 넛크래커란 호두를 양쪽에서 눌러 까는 호두까기 기계입니다.(148) 신(新) 넛크래커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을 외면했지만, 두 달 후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2000년대 정보기술(IT) 혁명을 잘 이용해 반도체와 같은 IT 산업으로 경제를 고도화하면서 일본을 압박하고, 중국을 따돌리면서 ‘역(逆)넛크래커’를 보여주었지요.중국의 역전과 새 경쟁자의 등장2010년대가 되면서 일본은 일명 ‘아베노믹스’라는 무제한 양적완화와 엔화 약세 정책으로 수출경쟁력을 향상시켰습니다. 중국도 ‘제조 2025’라 불리는 질적 성장 정책을 시작했지요. 차세대 정보기술, 항공우주장비,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등의 전략산업 육성이 주요 내용인데, 당시 한국이 주력으로 삼거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산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던 가격경쟁력을 잃었고, 기술경쟁력도 중국에 역전당할 처지가 되면서 ‘신(新)넛크래커’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실제로 2017년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산업의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1995년 16위에서 2015년 13위로 소폭 상승했지만, 중국은 20위에서 2위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지난 1월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발표한 ‘글로벌 핵심기술 경쟁 현황’(사진)을 보면, 한국은 64개 첨단기술의 국가별 경쟁력 순위에서 단 하나도 1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배터리 등 53개 기술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인도도 순위에 등장하면서 이제는 신흥 개발도상국도 한국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산업 대전환의 시기, 이제는 모든 국가가 우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