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킨다.'눈높이'도 '거시기' 못지않게 막연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유용한 말이다. '정치의 계절'인 요즘 이 말은 거의 무소불위로 쓰이는 것 같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에서 한 직원이 국회의원 배지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https://img.hankyung.com/photo/202403/AA.36110916.1.jpg)
하지만 일상에선 널리 쓰여도, 신문에선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기피어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의미를 담은 말이라 그렇다. ‘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킨다. “우리 동창, 거시기 말이야. 키 크고 늘 웃던 친구.” 이때 쓰인 ‘거시기’는 대명사다. 군소리로 쓰일 때는 감탄사다. “저기, 거시기, 길 좀 물어봅시다.” 이때의 ‘저기’나 ‘거시기’, 이런 게 군소리이고 군말이다.
‘눈높이’도 ‘거시기’ 못지않게 막연하면서도 뜻이 통하는 유용한 말이다. ‘정치의 계절’인 요즘 이 말은 거의 무소불위로 쓰이는 것 같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교육’, ‘시민 눈높이에 맞는 청렴한 인물’ 등 그 쓰임새에 막힘이 없다.학습지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우리말‘눈높이’는 애초 물리적인 높이, 즉 ‘수평으로부터 관측하는 사람의 눈까지의 높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100여 년 전에는 이런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어떤 사물을 보거나 상황을 인식하는 안목의 수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그런 쓰임새가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바로 대교그룹 ‘눈높이’ 학습지의 탄생이다.
1980년대에 ‘공문수학’이란 브랜드로 우리나라 학습지 시장을 키운 곳이 대교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장을 개척해 절대강자로 자리 잡고 있던 즈음 일본 구몬수학은 대교에 ‘공문’이라는 이름 대신 일본식 발음인 ‘구몬’을 쓰도록 압박했다. 대교는 고민 끝에 구몬과 결별하고 1991년 독자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그렇게 나온 게 ‘눈높이’ 브랜드다.
‘눈높이’ 시리즈의 선풍적 인기는 우리말에도 큰 영향을 줘 단어의 의미 확장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1991년 <표준국어대사전>이 이 말을 표제어로 다루면서 드디어 사전에 올랐다. 그전까지 대표적 국어사전이던 <국어대사전>(민중서림, 1982)에서도 이 단어는 다루지 않았다.
학습지로서의 ‘눈높이’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란 의미를 담은 말이다. 공급자에서 수용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담아 당시로서는 획기적 개념이었다. 가령 ‘학생 눈높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학생의 안목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를 띠었다.
![홍성호 이투데이 기사심사위원·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03/AA.2797521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