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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우리나라 경제가 작년 4분기 0.6%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전체로는 1.4% 성장했는데요, 1년 전(2.6%)의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2020년의 마이너스 성장(-0.7%) 이후 가장 나쁜 성적표입니다. 최근 8분기 연속으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주목됩니다. 외환위기 이전 10%,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엔 5%까지 성장하던 한국 경제에 저성장 기조가 완연해지고 있습니다.

작년 성장 정체의 가장 큰 원인은 내수 부족과 건설 경기 침체인데요, 고물가에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영향이 큽니다. 그런데 국내 소비지출은 줄이면서 해외여행 나가서는 돈을 많이 썼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반도체 수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수출만으로는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당연한 일일까요? 미국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GDP)는 우리나라의 16배가량 됩니다. 미국 성장률은 항상 우리나라보다 낮았지만, 2021년 5.9%로 우리를 앞서더니 작년에도 2.5%라는 성장률을 기록했어요. 몸집이 거대한 코끼리가 빠른 속도로 달리기까지 하면 경제 격차는 더 벌어지겠지요. 경제성장과 속도가 왜 중요한지, 우리나라 저성장의 원인은 무엇인지, 장기 저성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경제는 자전거' 성장해야 넘어지지 않아
일자리, 복지 재원 모두 성장에서 나오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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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분기별로 발표되고, 각국 중앙은행과 국제경제기구들은 수시로 성장률 전망치를 내고 수정도 합니다. 1년 내내 성장률 전망과 실제 수치 발표, 그에 대한 평가가 끊임없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어요. 바로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 물음입니다. 경제성장에 대한 인식은 경제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경제성장은 양보할 수 없는 과제

경제성장은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의 증가를 뜻합니다. 양대 생산요소가 노동과 자본이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하거나 기계와 같은 자본재 투입을 늘리면 한 나라의 경제는 성장합니다. 나라마다 차이는 나더라도 경제성장은 인류 역사에서 으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대공황 등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과 경기침체)을 겪으면서 경제성장이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경제성장은 국민소득을 증대하고 소비지출을 늘릴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요소입니다. 이를 통해 교육·의료·문화 등의 지출이 늘어나고 사회간접자본도 확충되면 국민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될 수 있죠. 또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과 입지를 다지고 협상력을 높여주며 군사력도 증강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아울러 일자리를 늘려주기 때문에 빈곤 감소와 소득불평등 해소, 그에 따른 사회 안정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장의 과실이 부유층에 집중되면 사회 양극화가 심화할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공장자동화로 사람 손이 필요 없어지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한 것도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지구의 자원은 유한한데 계속 성장만 강조해서 지구 생태계가 버텨내겠느냐는 걱정도 있습니다.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을 우려한 지식인 모임인 로마클럽은 1972년 발간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에서 성장이 항상 선(善)은 아니라는 시각을 비칩니다. 충분히 성장한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 사회적 행복을 더 가져오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에서 ‘탈성장(degrowth)’ 사회로 가야 한다고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이념적·정치적 주장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탈성장은커녕 성장세가 약화하기만 해도 끊임없이 소비를 늘려온 현대인은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우리나라 성장률이 1%p만 낮아져도 취업자 수가 45만 명 줄어들고, 가계의 월평균 소득이 10만 원가량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실질GDP가 약 2000조 원 규모이기 때문에 성장률이 1%p 줄어들면 한해 사회간접자본 예산(26조 원 규모)이 그냥 사라지게 됩니다. 사회발전이 그만큼 더뎌지겠지요. 이런 점에서 경제는 마치 자전거와 같아요. 페달을 계속 돌리고 전진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도 ‘국가 정체’ 우려

또 다른 경제의 중요 가치인 ‘분배’를 위해서도 성장은 계속해야 합니다.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죠. “최고의 복지정책은 바로 성장”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가난한 근로자는 국가가 정체 상태일 때 비참해진다”라고 썼습니다.

근래 세계경제의 최대 이슈는 저성장입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선진국 경제도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진 듯 엄청난 금융완화 정책에도 경기가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으로 보호무역 기조는 강해지고, 세계 교역량은 크게 늘지 않으며, 공급망이 분리돼 세계경제에 새로운 냉전이 온 듯합니다. 과거 4~5% 성장하던 세계경제가 2%대로 감속하니 ‘30년 만의 저성장 국면’이란 평가마저 등장합니다. 경제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지금, 성장은 양보해선 안 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NIE 포인트1.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알아보자.

2.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과거 성장률 추이를 찾아보자.

3. 성장이 분배보다 중요한 이유에 대해 토론해보자.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저성장의 늪'
세계 4위로 주저앉은 일본 교훈 삼아야
일본의 작년 소비자물가지수가 3.1% 오르며 4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나긴 침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AFP연합뉴스
일본의 작년 소비자물가지수가 3.1% 오르며 4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나긴 침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AFP연합뉴스
글로벌 저성장 시기에 한국 경제만 ‘잘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세계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고 얘기될 정도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최근 10년을 볼까요? 2014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2%였는데, 5년 뒤인 2019년 2.2%로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지배하는 불길한 법칙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바로 ‘5년 1% 하락의 법칙’인데요, 이게 묘하게 코로나19 사태 직전 5년간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5년 1% 하락 법칙’ 이제는 깰 때

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진짜 실력(성장 능력)을 보여주는 건 10년 평균으로 계산하는 장기성장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1990년대 초부터 5년마다 1%씩 거의 규칙적으로 떨어져온 겁니다. 마치 미끄럼틀 타고 내려온 듯한 장기 성장률 그래프가 이젠 1%대 초반을 가리킵니다. 작년 우리나라 성장률 1.4%와 얼추 비슷하죠.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인 잠재성장률이 한국의 경우 작년 2.1%였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가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인구 감소입니다. 이로 인해 경제활동인구가 줄면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성의 경제활동 여부가 중요한 경제활동참가율(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인구)도 2022년 한국은 70.5%로, 선진 7개국(G7, 평균 75.6%)과 비교해 가장 낮습니다. 한 사람의 노동력이 산출해내는 생산량인 노동생산성도 선진국보다 떨어집니다. 2022년 한국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GDP/총노동시간)은 46.9달러로, G7(74.2달러)의 63%에 불과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난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외치기보다 최저임금을 빨리 올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데만 신경 썼어요. 그 부작용이 성장률 저하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똑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도 산출량이 나라마다 다르다면 그것은 총요소생산성 때문입니다. 이 또한 높을수록 좋은데요, 2019년 한국은 0.61(미국을 1로 잡을 경우)로 G7의 0.84에 훨씬 못 미칩니다. 기업 활동을 돕는 법과 제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파업을 일삼는 전투적인 노동조합 관행이 계속되고,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1970~1980년대에 제품 하나라도 더 수출해 선진국을 따라잡자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됐던 시절의 고속 성장은 이제 옛 기억에만 존재합니다.

저성장 원인 속에 해답 있어

저성장의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일본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1960년대 고도성장이 만들어낸 일본의 거품경제는 부동산 가격이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1990년대에 붕괴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일본 정부는 제로(0) 금리를 유지하며 경제 회생을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인 특유의 미래 대비 정신으로 화폐는 퇴장(저축)되고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죠. 이 시절을 두고 잃어버린 20년이니, 30년이니 일본인들은 자조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는 GDP 기준으로 1968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는데요, 2010년 중국에 이어 지난해엔 독일 경제에 밀려 세계 4위로 주저앉았습니다. 경제력 후퇴는 국민 마음속에 패배감을 안기며 국력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답은 저성장의 원인 속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지 않도록 신생아 출생률을 높이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사회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의 복지 강화를 위한 예산 확대 못지않게 인적자본(human capital) 개발과 투자에 힘써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쟁력을 높여내야 합니다. 노동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적정한 임금 수준, 생산적인 고용 관행, 법·제도의 국제화·효율화 등도 필요합니다. 할 일이 참 많지요.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때입니다.NIE 포인트1. 우리나라 노동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이 낮은 이유를 알아보자.

2.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토론해보자.

3. 1인당 GDP가 높은 나라, 성장률이 높은 나라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