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디지털 경제와 혁신

디지털 전환의 성공은 기술개발이 아닌 기술개발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로 평가.
영국이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기술개발 혹은 사업 성공을 통해 현재보다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살았다. 국가마다 이러한 경향은 존재했지만, 영국만큼 강한 나라는 없었다. 이러한 열망의 주인공은 중간 계층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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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전의 영국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비해서도 뒤떨어진 국가였다. 1300년경 무일푼으로 시작해 성공하는 영국인은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1577년 성직자 윌리엄 해리슨은 <잉글랜드에 대한 묘사>에서 잉글랜드에서는 사람을 신사와 도시민, 소규모 자영농 그리고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 장인, 하인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한다. 16·17세기에도 이러한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는 1536년 시작되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임을 스스로 선포했다. 그러면서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재산을 몰수해 팔아버렸다. 당시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는 전체의 무려 4분의 1이었다. 엄청난 양의 토지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몇몇 부유층 가문이 소유한 토지가 크게 늘었으며, 어느 정도 규모의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헨리 8세 이후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기간에는 중세 잉글랜드 사회 신분 질서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런던과 항구도시에는 강력한 상업 계급이 형성되었고, 해외 교역에 활발히 참여했다. 1300년경 가장 낮은 계급이던 자영농과 숙련 장인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비중 있는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사회적 변화는 제임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선포하면서 급격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과거 이집트 파라오들에게 익숙할 만한 수준의 사회를 상정했다. 왕은 지상의 신이자 가장인 아버지이면, 사회의 나머지는 온순한 자녀들로서 왕을 우러르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부상하던 농촌의 토지 소유 및 도시 상인 계층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았고, 결국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으로 확대된다.

의회파는 정치적 권력이란 토지와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이 내전에서 승리하고 공화정이 시작된다. 이러한 변화는 1688년 명예혁명에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토지가 재분배된다거나 통치 방식이 극적으로 바뀌는 변화는 없었다. 단지, 재산과 재산 소유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기조가 강해질 뿐이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을 자극했다. 평범하게 태어났어도 사업가 정신과 혁신이 가능하다면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진 중간계층이 스스로 혁신하고자 했고, 사회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중간계층이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실제로 크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폭발하는 계기였다. 이는 과학도, 억압된 계층의 반란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에서도 농민 봉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사회 경제적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중국에서는 눈에 띄는 과학적 진보가 있었지만, 위계에 도전한 제도적 변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사회적 위계에 대한 도전이 없으면서도 변화가 이뤄졌다.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의 관점에서는 기존 사회체제를 전복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부를 얻을 수 있다면 계층의 상단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18세기 영국에서 부는 더 이상 토지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교역을 하거나 공장을 지어도 큰돈을 벌 수 있었고, 사회적 지위가 따라왔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같은 이유로 이들의 비전은 포용적이지 않았다. 중간계층은 부를 통한 지위 획득에만 관심이 있을 뿐 도시와 농촌의 빈민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영국이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자극해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모두가 잘살게 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디지털전환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VR(가상현실) 등 신기술에 대한 수사가 넘쳐나지만, 기술개발이 곧 모든 사람의 개선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산업화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대한 개별주체의 역할만이 아니라, 기술을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정부와 의회, 기업, 소비자 모두의 고민이 필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