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디지털경제와 한계생산성
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균형 잡힌 혁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뉴욕 타임스’에 짧은 글을 남겼다. 제목은 매우 대담했다. ‘프리드먼 독트린’. 프리드먼은 기고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높여 주주에게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올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1980년대는 경제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는 시기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기업의 수익이 근로자들에게 합리적으로 배분됐다. 당시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자동화와 노동 대체가 존재했지만 이를 상쇄할 만한 투자가 뒷받침되면서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감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제조업 소득 가운데 노동에 돌아가는 몫 역시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70% 수준으로 일정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기업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수익을 높여야 한다고 독려했고, 이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로 자리 잡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 경쟁이었다.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균형 잡힌 혁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
특히 일본 자동차와의 경쟁은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 시기 미국 경영자들은 노동을 더 이상 자원으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 여겼다. 자연스럽게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은 절감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자동화로 근로자를 대체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미국은 1980년대까지 제조 현장에서 로봇 도입에 뒤처진 국가였다. 인구가 풍부한 덕에 로봇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미국 제조업에서도 로봇이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한다.
독일에서는 동일한 소프트웨어와 로봇 기술을 가지고도 미국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독일 제조 업체들은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조와 협상을 하며, 자신의 의사결정을 이사회에서 노동자 대표에게 설명한다. 또한 근로자 해고에 매우 소극적이다. 이는 호혜적인 이유에서 비롯되기보다 실제로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자신의 회사에서 해당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고, 독일 제조 업체들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훈련받은 노동자들의 한계생산성을 높여주는 일이 보다 회사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에서는 산업 자동화가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음에도 블루칼라 근로자들을 재교육해 기술직, 감독직 또는 화이트칼라 직군의 새로운 일을 맡게 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독일의 산업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이나 ‘스마트 팩토리’도 같은 맥락이다. 잘 훈련받은 근로자가 ‘컴퓨터 기반 디자인’이나 ‘컴퓨터 기반 품질 관리’ 등의 도구를 사용해 디자인이나 검수 업무를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모델이다. 덕분에 독일 산업은 새로운 로봇과 소프트웨어를 누구보다 빠르게 도입하면서도 근로자의 한계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근로자 증가로 이어졌다. 반면 미국의 자동차 업체는 기업의 산출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고용은 25%가량 줄었고 직군 간 업그레이드도 발생하지 않았다.
1980년대 도요타는 인간의 업무를 자동화하던 중에 생산성이 그리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공정에 사람이 없으면 수요나 생산 조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가 없어 오히려 생산성이 저하되었다. 도요타는 자동화 속도를 늦췄고, 핵심 역할을 하는 노동자를 다시 불러왔다.
미국 진출 당시에도 같은 전략을 활용했다. 캘리포니아주에 자리한 GM의 프리몬트 공장은 낮은 생산성, 노사 갈등으로 고전하다가 1982년 문을 닫았다. 도요타는 GM과 합작회사를 세우면서 프리몬트 공장을 다시 열었고, 같은 근로자와 노조 지도부를 유지했다. 도요타는 자신들의 경영 원칙에 맞게 기계를 노동자 재교육과 노동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유연성 및 주도력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프리몬트의 생산성과 품질 수준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보다 훨씬 높아졌고, 도요타의 일본 공장들에 맞먹을 정도였다.
일론 머스크 역시 테슬라 제조 공장의 모든 부분을 자동화하려 했지만, 비용이 급증하고 생산은 지연되는 문제를 겪었다. 그는 과도한 자동화는 인간의 가치를 절하한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결국, 기술은 근로자를 대체하는 자동화 수단이 아니라 정보 공유와 협업을 지원해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고, 근로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균형 잡힌 혁신이 경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