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36) 회색코뿔소
1637년 1월 30일, 추운 눈보라와 겨울바람을 맞으며 저항하던 조선의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 누르하치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선은 후금(청나라)의 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을 겪고도 왜 이런 비극을 겪었을까요? 대비할 수 있었던 전쟁
[테샛 공부합시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 신호 외면하지 말고 대비해야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고 각종 물자를 바쳐야 했지요. 하지만 당시 인조를 비롯한 신하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며 명나라와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여기는 명분론에 사로잡혀 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자 청나라 입장에서는 정묘호란 이후 화친을 맺었음에도 조선이 명과 함께 자신들을 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죠.

그렇다면 당시 조선은 전쟁을 대비했을까요? 청 태종이 조선의 재침공을 결심하면서 조선 국경에 전쟁의 기운이 감지되자 국경을 지키던 장수들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합니다. 하지만 인조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국경 방어와 관련한 요청을 모두 거부하지요. 인조와 신하들은 ‘설마 또 쳐들어오겠어? 정묘호란 때처럼 협상하면 물러나겠지’ 이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결국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달리 청나라의 빠른 진격 속도를 예상하지 못한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도 못 한 채 남한산성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한국의 위험 요인, 부채 위기조선은 다가오는 위기의 신호를 보고도 외면했고 비극을 겪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회색코뿔소’를 외면하다가 큰 위기를 겪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는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소장이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발표한 개념입니다. 덩치가 큰 코뿔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막상 코뿔소가 달려오면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지속적인 경고로 이미 알고 있던 위험 요인을 간과했다가 큰 위험에 직면하는 상황을 의미하죠.

최근 한국에서도 회색코뿔소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급증하는 가계·기업·정부 부채죠. 국제통화기금(IMF)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의 비율은 281.7%라고 합니다. 가계는 108.1%, 기업은 173.6%(사진)를 기록했죠. 또한 정부 부채 비율은 2017년 40.1%였지만, 지난해 54.3%까지 올랐습니다. 주요국은 부채를 줄이는 추세에서 한국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지요. 코로나19와 장기간 저금리 시대를 보내면서 가계는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 호황으로 빚을 늘렸고, 한계기업도 빚으로 연명했습니다. 정부도 경제 충격을 방어하려고 빚을 늘려 지출을 늘렸지요. 하지만 이에 따른 후유증과 위기가 점점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위기로 국제유가가 급등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통화긴축을 중단하려던 각국 중앙은행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빚 상환 부담과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지요. 회색코뿔소를 대비해 위험이 현실이 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을 짜야 하는 시기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