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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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샛 공부합시다
반복되는 경제 위기 신호 외면하지 말고 대비해야
1637년 1월 30일, 추운 눈보라와 겨울바람을 맞으며 저항하던 조선의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 누르하치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선은 후금(청나라)의 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을 겪고도 왜 이런 비극을 겪었을까요? 대비할 수 있었던 전쟁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고 각종 물자를 바쳐야 했지요. 하지만 당시 인조를 비롯한 신하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며 명나라와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여기는 명분론에 사로잡혀 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자 청나라 입장에서는 정묘호란 이후 화친을 맺었음에도 조선이 명과 함께 자신들을 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죠. 그렇다면 당시 조선은 전쟁을 대비했을까요? 청 태종이 조선의 재침공을 결심하면서 조선 국경에 전쟁의 기운이 감지되자 국경을 지키던 장수들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합니다. 하지만 인조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국경 방어와 관련한 요청을 모두 거부하지요. 인조와 신하들은 ‘설마 또 쳐들어오겠어? 정묘호란 때처럼 협상하면 물러나겠지’ 이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결국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달리 청나라의 빠른 진격 속도를 예상하지 못한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도 못 한 채 남한산성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한국의 위험 요인, 부채 위기조선은 다가오는 위기의 신호를 보고도 외면했고 비극을 겪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회색코뿔소’를 외면하다가 큰 위기를 겪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는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소장이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발표한 개념입니다. 덩치가 큰 코뿔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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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패전 후 조선은 청나라 속방으로 전락…백성 50만명 이상 포로로 끌려가
이웃한 국가 간은 협력과 우호관계일 때도 있지만 경쟁과 갈등, 불가피한 충돌도 발생한다. 때로는 우리의 선택이나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제질서 때문에 충돌하기도 한다. 일부 배신자를 제외하고, 국가 간 충돌에서 패배한 국가의 백성에게는 포로, 노예, 죽음의 길이 기다린다.조선은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국가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망각한 성리학자들의 나라였다. 광해군의 정책과 같이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외교적으로 이용하면 청나라의 공격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청을 자극해 전면전을 초래했다.청태종의 친정군 12만 명의 선발대가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넘었지만 12일에야 사실을 보고받았던 정부는 무능했다. 더구나 임진왜란의 대참상을 겪고, 정묘호란이 끝난 지 불과 9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몰현실적인 자주론자들의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불과 45일을 버티다 항복했다.승전국과 패전국은 협의 끝에 9개 조항을 만들어 공표했다. 조선은 청나라에 군신(君臣)의 예(禮)를 지킬 것,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관계를 끊고 명나라를 칠 때 출병(出兵)을 요구하면 어기지 말 것 등이었다. 그리고 인조가 항복의식을 행한 삼전도에는 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이렇게 조선은 명나라 대신 청나라의 속방으로 전락했다. 이 같은 상황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인 때까지 이어졌다.조선의 정책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전쟁 기간이 매우 짧았고, 전장이 한반도 북부와 수도권에 한정됐으며 큰 전투가 없었지만 완벽한 패배와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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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글이 통신
수능 세계사, 외우기보다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세요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에는 총 9개 과목이 있습니다. 그중 유독 응시자 수가 떨어지는 과목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응시자가 2만 명이 안 되는 세계사와 1만 명도 채 안 되는 경제가 있습니다. 저는 수능 때 세계사를 응시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역사에 자신이 있어서 선택했고, 후회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 방법이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세계사를 공부했던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세계사 범위 넓지만 출제되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아세계사의 특징으로는 매우 넓은 범위를 다룬다는 것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국, 중동, 유럽, 동남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르치기 때문에 그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학생들이 세계사를 응시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넓은 범위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암기할 내용이 매우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렇지만 수능에서 출제되는 영역들은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인도, 동아시아) 역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 영역에서 한두 문제가 나오는 정도입니다. 중앙, 남아메리카는 대표 문명과 유적들만 알고 있으면 되고, 동남아시아도 왕조들 몇 개만 알면 됩니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들은 빈번하게 출제되는 영역에서 학생들이 놓친 부분(2020학년도 수능에서의 리디아 왕조)에서 출제됩니다. ‘비주류 지역’들은 기본적인 내용만 숙지하고 ‘주류 지역’들을 철저하게 공략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공부 범위가 좁을 수도 있습니다. 사건의 인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