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디지털 경제와 산업정책

각국의 산업정책 시행으로 세계경제 질서 변화. 각 산업에 맞는 세분화 전략이 필요.
디지털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산업정책이다. 오랜 기간 정부의 시장 개입은 비효율적인 행위로 간주 되었지만, 빠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산업정책 하에서는 시장의 힘만으로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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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사실 오래전부터 산업정책을 실행해왔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대출, 보조금, 장려금 등을 지원하고, 다양한 행정적 규제를 완화했다. 1986년 중국의 기술 현대화를 위한 ‘863계획’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1970~1980년대의 불균형 성장도 같은 맥락이다.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을 국가 주도로 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갈 수 있었던 배경도 산업정책에 있다.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이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활동이 혁신을 성공적으로 촉진한 임무 지향적 산업정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비판을 받으며 점차 사라졌다. 반경쟁적 결과를 낳고, 민간 투자가 감소하며, 특정 주체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 5년 전부터 산업정책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문제의 부상이 있다. 그리고 많은 국가가 산업정책의 부재로 인한 자국의 전략적 역량 약화가 경제성장과 안보, 혁신역량의 저하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정책은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사회에 영향력 행사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중국의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등이 대표적이다.

민간이 정부만큼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없어 보여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한 미국의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 대표적이다. 임상 속도를 높이고, 진단 및 치료법과 같은 신기술 도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산업정책은 주로 특정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에어버스는 유럽 정부들의 지원으로 인해 대규모 고정비용을 감당하며 상용 항공기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를 산업정책으로 끌고 가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의 초점은 전기차에 집중되어 있다. 자동차의 전동화 이슈의 중요성을 빠르게 파악한 중국은 국산 전기차 구매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전기차 제조국이 되었고, CATL·BYD 같은 중국 업체는 리튬 배터리와 부품의 지배적인 공급업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지정학적 경쟁은 미국 정부의 산업 개입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에 대해 기업 소유와 수출 금지에 대한 규칙을 제정했다. 유럽연합은 그린딜 산업 계획을 발표하고,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과학법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과거와 오늘날의 산업정책이 다른 점은 세계가 훨씬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이를 통제하려고 한다. ‘민주적 반도체 공급망’을 위해 일본, 한국, 대만, 미국을 아우르는 ‘칩 4 동맹’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기업들에게는 큰 도전 과제다. 만약 중국이 강력한 산업정책으로 미국의 우방인 한국, 대만으로 하여금 디스플레이 제조를 포기하게 만든다면 미국은 전적으로 중국에서 디스플레이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산업정책이 회사의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반도체·과학법은 군용 및 필수 상업용 반도체 제조 역량에 대한 미국 내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지 미국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 보장을 위한 법이 아니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이처럼 세계질서는 새로운 규칙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각국의 산업정책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분야별,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계화 방식에 맞춰 설계된 전략은 이제는 서로 다른 국가적 맥락과 제약 그리고 각 산업에 맞는 세분화된 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모두 보다 기민하고 현명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