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가스공사 미수금의 마법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가스공사가 지난해 2조4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고 밝히고도 미수금 때문에 주주배당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다.한국가스공사가 지난해 장부상으로는 대규모 흑자가 났는데도 배당을 하지 않아 논란이라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한국가스공사는 왜 이익이 났는데도 배당을 하지 않았을까요? 비밀은 한국가스공사의 독특한 회계 처리 방식에 있습니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정부 방침에 따라 요금을 올리지 못해 발생한 사실상의 ‘손실’이다. 연료비가 오르면 그만큼 가스요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생긴 손실을 ‘앞으로 받을 돈’, 즉 미수금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재무제표상 자산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가스공사는 사실상 막대한 적자를 내더라도 회계상으로 흑자를 기록할 수 있다. 미수금이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는 ‘마술 지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 2023년 2월 28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 -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약 1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 이익은 실제 들어온 돈이 아니라 장부에만 적혀 있는 숫자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가스공사는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가계부를 적습니다. ‘미수금’이라는 항목을 활용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 가스공사가 외국에서 100원에 가스를 사와서 국내에 50원에 팝니다. 이건 정부가 나서서 가스비를 많이 올리지 말라고 억누르니까 어쩔 수 없이 싸게 파는 거죠. 그러면 가스공사는 50원이 손해인데, 보통은 이걸 가계부에 ‘50원 적자’라고 적습니다. 그런데 가스공사는 미수금이라고 적습니다. 원래는 받아야 했는데, 아직 못 받은 돈. 그래서 어차피 나중에 받을 돈이니 이익으로 적는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스공사가 숫자로만 적은 이익, 즉 미수금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만 8조6000억원이나 됩니다. 그러니 가스공사가 지난해 장부상으로는 1조5000억원 이익을 냈다고 해도 미수금이 훨씬 많기 때문에 사실상 적자 덩어리인 겁니다. 게다가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올해 1분기 말이 되면 12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는 가스요금이 많이 올랐다고 느끼지만, 가스 원가 상승에 비하면 적게 오른 것이어서 가스공사가 못 받은 돈이 빠르게 불어나는 상황입니다. 이렇다 보니 가스공사는 장부상으로는 돈을 벌었지만, 올해는 배당을 못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고요.
가스공사가 이렇게 적는 것도 나름대로는 근거가 있습니다. 가스공사가 수도권에 도시가스를 처음 공급한 게 1987년입니다. 그때는 가스요금을 고정원료비제라는 걸 바탕으로 정했습니다. 한 해 동안 내내 고정된 가격에 가스를 수입해 온다고 가정하고, 가스요금을 정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환율이나 가스 가격이 요동치면 가스공사 적자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부터는 2개월 간격으로 원료비를 가스 가격에 반영하는 원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가스공사는 2개월에 한 번 원료비가 움직이는 만큼 가스요금을 올리고 내리도록 돼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에선 원칙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면서 ‘비상시에는 연동제를 유보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뒀는데, 언제가 비상시인가 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사실상 정부 마음대로 연료비 연동제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쌓인 미수금은 나중에 가스 가격이 안정되고 정부가 다시 ‘연동제 재생 버튼’을 누르면 받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원료비가 떨어졌으니 가스요금도 내려야 하는데, 가격을 안 내리는 대신 여기서 난 이익으로 미수금을 차곡차곡 갚아나가는 겁니다.
가스공사처럼 회계 처리를 하는 사례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부도 이 점 때문에 한때 미수금 제도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쌓여버린 미수금을 한번에 손실 처리하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나수지 한국경제신문 기자NIE 포인트1. 회계상 미수금의 정의를 알아보자.
2. 가스공사가 흑자를 내고도 배당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가스공사 미수금 논란의 쟁점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