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20) 동태적 비일관성
미국에서 지난해 1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와 근원PCE는 전년 같은 달보다 각각 5.0%, 4.4% 올라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미국 중앙은행(Fed) 내 위원들이 매파(통화 긴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올해에도 기준금리는 지속적으로 인상된다는 내용이었죠. 통화정책 담당자들이 이에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화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시장미국은 지난해 6월 PCE가 정점을 찍은 이후 물가 상승이 조금씩 둔화하는 추세지만, 아직 Fed의 목표인 근원물가 상승률 2%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Fed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경제가 침체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물가지표가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물가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이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하는 ‘피벗(pivot)’을 원하면서 Fed는 난감해졌습니다. 그래서 Fed 인사들은 긴축 속도를 줄일 때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120) 동태적 비일관성
Fed가 시장의 기대심리를 억누르려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물가 안정’이지요. 코로나19 확산으로 Fed는 다양한 통화완화정책을 펼쳤습니다. 통화량을 늘려도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으리라 판단했죠. 하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공급망 붕괴로 물가는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일시적이라고 했지만,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해 뒤늦게 통화 긴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제어하기 어려웠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Fed최근에야 이런 흐름이 둔화되는 듯하자 시장에서는 정책 전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Fed는 ‘동태적 비일관성’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중앙은행의 최적정책은 물가 안정이고, 이를 위해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하죠. 하지만 중앙은행은 단기 경기 변동을 이유로 통화정책을 변경합니다. 이것이 누적되면 경제 주체는 중앙은행이 공표한 목표를 신뢰하지 않고, 이번과 같이 경기침체의 조짐을 보이면 물가 안정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중앙은행이 정책 기조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됩니다.
중앙은행의 정책들이 동태적 비일관성을 갖게 되면 경제 주체는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고, 정책 효과도 의도한 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화당국은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준칙에 따라 일관되게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미리 설명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동태적 비일관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죠. 앞서 Fed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 역시 시장의 신뢰 회복과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깨진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한 길은 이렇게 멀고도 험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