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디지털 경제와 제도
제도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의 산물.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점검이 우선돼야.
규제가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하면서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볼멘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타다 금지법’은 제도가 혁신을 가로막은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하고, 미국과 같은 네거티브 체계로의 전환 혹은 강한 힘을 가진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제도와 사회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해온 기존의 복잡한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새로운 제도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계은행이 오랜 기간 투자한 개발도상국의 제도적 지원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세계은행이 지원한 여러 사업에 투입된 500억달러 넘는 자금은 개발도상국의 제도 개혁에 집중됐다. 가난한 나라들의 건강한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좋은 제도가 전제돼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기반했다. 서유럽의 시각으로 동유럽의 법률을 개정하거나, 케냐 일부 지역에 영국이 사유재산권을 도입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존 사회와 단절돼 억지로 밀어붙여진 제도들은 작동하지 못했다. 효율성과 투명성 모두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렌트 프리쳇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중요한 것은 법률이나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회의 규범이라고 설명한다. 덴마크에는 보건과 관련해 200쪽에 달하는 법률이 존재하지만, 명문화된 법률만으로는 이 법률로 인해 덴마크 의사들이 어떻게 동기부여가 되고, 덴마크에서 보건에 대한 지원이 왜 우선순위에 놓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치관과 문화하버드경영대학원의 고(故)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다른 사회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해 올 수 없는 이유는 제도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치관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푸는 방식 또는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가치관은 사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데서 잘 작동하던 제도를 그대로 수입하는 일은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제도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진짜 문제는 사회의 본질적인 역학 즉,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나 사람들이 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있다. 제도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 이유다. 아무리 새로운 비즈니스라 하더라도 제도의 변화를 위해서는 한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제도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의 산물.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점검이 우선돼야.
한편, 문화 역시 제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 문화는 혁신이나 제도만큼 자주 언급되는 단어지만, 상황에 따라 규정하는 정도는 매우 다르다. 이에 대해 조직 문화 분야를 연구하는 에드거 샤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문화를 ‘사람들이 너무 자주 좇았고, 또 그렇게 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방식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어떤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어떤 문화가 한번 형성되고 나면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당연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자동적으로 하게 될 거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이런 본능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날 수 없고, 새로운 법이 생기거나 제도가 보완됐다고 해서 금방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오랜 기간 학습된 결과로 생겨난다. 규제 개혁과 가치관 제도가 가치관과 문화의 산물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규제 개혁의 방향도 살펴볼 수 있다. 규제를 이야기할 때 공무원들의 극단적인 위험회피나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이 역시 가치관과 문화의 산물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전과 동일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공유된 방식으로 이뤄진 의사결정의 결과를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선하고자 하는 규제나 제도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이로 인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담긴 사회적 결과물임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