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디지털경제와 노동시장
집적 이익 창출하지 못하는 도시들은 시간이 갈수록 근로자와 기업을 모으기 어려워지죠.
노동시장은 중매 사이트와 닮았다. 남자 100명과 여자 100명이 모여 있는 사이트가 남녀 10명씩 보유한 사이트보다 짝을 찾기가 쉽다. 물론 후자의 사이트는 두 경우 모두 ‘판매자’ 한 명당 잠재적인 ‘구매자’ 한 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형을 찾을 확률은 사람이 많은 사이트가 훨씬 높다. 그녀(그)가 선택할 수 있는 상대방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노동시장의 장점중매 사이트는 노동시장이 두꺼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꺼운 노동시장이 고용주를 근로자에게 더 잘 연결시킨다는 점이 핵심이다. 재조합 DNA 기술의 특정 분야를 전공한 분자생물학자는 자신을 고용할 생명공학 기업을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명공학이 발달한 보스턴이나 샌디에이고로 이동한다면 보유한 기술에 돈을 지급할 기업을 찾아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반면 생명공학 기업이 드문 포틀랜드나 시카고 같은 도시로 이동한다면 이상적이지도 않고 낮은 급여를 주는 회사에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 위치하느냐의 문제가 훗날 경력의 궤적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면 그 중요함이 몇 배로 높아진다. 당연히 두꺼운 노동시장은 고용주에게도 큰 장점이 된다. 고용주는 자사 요구에 딱 맞는 분자생물학자를 찾을 수 있어 생산성 개선과 수익 증대, 더 나아가 보다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이뤄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기업이 실리콘밸리로 모여드는 이유이다. 노동시장 규모와 사회적 변화노동시장 규모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자주 바꾸는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로자 1만2000명을 20년에 걸쳐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 경력 초반에는 근로자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작고 특화된 지역 노동시장보다 크고 다양화된 지역 노동시장에서 더 자주 직장을 옮긴다. 하지만 안정성이 중요해지는 경력 후반기에는 큰 시장에서 직장을 덜 옮긴다. 직장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두꺼워진 노동시장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고유의 이득을 누림과 동시에 그 이득이 해당 시장의 모든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도록 만든다. 이는 기존 기업과 근로자들이 새로 유입되는 신참 노동자들에 의해 더 생산적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집적 이익 창출하지 못하는 도시들은 시간이 갈수록 근로자와 기업을 모으기 어려워지죠.
한편 두꺼운 노동시장의 장점은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그 영향력이 더 커진다. 갈수록 잘 교육받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잘 교육받은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결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는 교육 측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자리 형태나 봉급 그리고 다양한 요인을 포함한다. 즉, 사회경제적 특성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고자 한다. 이처럼 매우 구체적인 특성을 가진 상대를 찾는다면 두꺼운 데이트 시장이 훨씬 유리하다. 두꺼운 노동시장과 도시의 성장노동시장 규모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 도시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주요 혁신 부문이 소수의 도시에 집중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는 집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도시들은 시간이 갈수록 근로자와 기업을 모으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두뇌중심지와 그렇지 못한 도시들 간 격차를 심화하는 요인이 된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가 혁신도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도시 간 격차의 문제를 다시 바라보도록 만든다. 기업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지만,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으면 지역의 매력이 떨어지고, 첨단기술을 보유한 근로자들이 더 나은 지역으로 떠나게 돼 도시의 매력은 더 크게 감소한다. 즉, 공동체가 생산지형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공동체 환경은 악화된다.
오늘날 도시의 집적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하나하나가 큰 이슈지만, 집적과 혁신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도시의 집적을 통한 혁신을 이어갈지, 그렇지 못한 지역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 하더라도, 진짜 지식은 위키피디아가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보고 배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