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디지털경제와 스타트업

벤처 생태계가 성숙한 오늘날, 모험자본의 지원만으로는 부족. 실패 사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
[디지털 이코노미] 스타트업의 성패 가르는 요인, 실패 연구에서 찾자
많은 스타트업이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간단히 찾을 수가 없다. 린 스타트업의 권위자 에릭 리스는 ‘실패할 수 없다면 배울 수도 없다’고 했지만 스타트업 창업자가 실패를 통해 배우기란 쉽지 않다. 실패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창업자 스스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의 실패를 지나치게 단순한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철학자들은 이를 ‘단일 원인의 오류’라고 지칭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경쟁에서 패한 이유를 ‘경합 선거구에서 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으로 단순화하거나, 특정 스포츠 팀이 연패에 빠진 원인을 ‘스타 선수의 부상’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에 빠져 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어떤 대상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당사자의 ‘기질적’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압력이나 환경적 조건 등의 ‘상황적 요인’을 간과하는 것이다. 새로 창업한 스타트업이 문을 닫게 되면 투자자들이나 직원들은 설립자의 결점을 지적하고, 설립자는 외부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도 근본적 귀인 오류에 빠진 원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실패 요인토머스 아이젠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오류들로 인해 스타트업의 진정한 실패 원인을 분석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실패 요인을 초기와 후기 단계의 함정으로 구분한다.

초기 단계의 함정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긍정의 오류’다. 긍정의 오류란 창업자들이 소수 얼리어답터의 열광적인 반응에 현혹된 나머지 주력 시장에도 큰 수요가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좋은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해줄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시장 수요에 맞는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더라도 수요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이 형성되면 실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린 스타트업 전문가들은 회사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만적 신호’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유혹에 취약하다. 본격적인 제품 마케팅에서 시장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전략 수정을 통해 주력 시장 고객을 겨냥한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많은 대가를 수반한다. 회사는 제품을 다시 개발해야 하고, 잠재고객들은 제품 변화에 혼선을 겪을 것이며,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제품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리어답터들도 변화된 제품에 소외감을 느껴 제품 구입을 포기할 수도 있다.

초기 단계의 문제를 잘 극복한 스타트업들은 속도의 함정과 자원 고갈에 대비해야 한다. 초기 시장 확보에 성공하면, 얼리어답터들이 입소문을 내준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 고객이 몰려든다. 짧은 시간에 급속한 초기 성장을 달성한 회사는 열정적인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지분을 사들이면서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 공격적인 확장을 주문한다. 문제는 해당 스타트업이 집중적인 마케팅에 돌입하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신규 시장으로 고객층을 확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새로 확보한 고객들은 얼리어답터만큼 이 회사의 가치 제안에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소비 규모도 작고 재구매 확률도 낮다. 따라서 신규 고객에 의한 입소문은 줄어들고, 성장을 위해 회사는 마케팅에 더 많은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기업 간 경쟁도 심화된다. 기업은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낮추고 프로모션에 돈을 쏟아붓게 되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고객이 기업에 지불하는 가치보다 고객을 새롭게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게 된다. 스타트업의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투자자들은 더 많은 자본금을 투입하기를 꺼리게 된다. 결국 CEO는 현금 확보를 위해 성장의 속도를 줄이고, 인력을 축소하게 된다. 체계적인 실패 분석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아이젠만 교수는 “많은 스타트업이 아무리 어려워도 절대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완고한 심리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무의미한 질주’라고 표현한다. 폐업이 늦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은 더욱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투자자에게 조금이나마 돌아갈 자본이 의미 없이 소진되고, 구성원들은 새로운 경력을 찾아 나설 시간을 빼앗긴다. 하지만 사업은 언제 접어야 하고, 버텨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트위터, 슬랙, 유튜브 모두 어려운 시기를 끈질기게 버텨내 성공한 기업들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고민과 분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