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 기업 역사에서 ‘월클 레전드’로 평가받습니다.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한 선수가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려면 어떤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를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이비드 베컴, 디에고 마라도나,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우리는 레전드들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업적을 추앙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왜 ‘월클’로 꼽힐까요?
[커버스토리] '세계 1등' DNA 심어준 도전가…삼성을 '월클'로 키우다
이 회장은 1987년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을 맡았습니다. 그가 30년간 이룬 업적을 몇몇 수치를 통해 살펴볼까요? (1)매출: 1987년 9조9000억원, 2018년 387조원. (2)영업이익: 1987년 2000억원, 2018년 72조원. (3)시가총액: 1987년 1조원, 2018년 396조원. (4)고용 인력: 1987년 10만 명, 2018년 52만 명. 더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매출 39배, 영업이익 360배, 시가총액 396배, 인력 5.2배 증가. 삼성이라는 브랜드 파워는 1987년 바닥권에서 작년 5위로 올라섰습니다. 작년 발표된 ‘글로벌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다음 자리를 삼성이 꿰찬 겁니다. 정확하게 한 세대(30년)를 고생한 끝에 낙(樂)이 온 겁니다. 경이적인 성과요 성장입니다. 애플도 경계하는 초일류가 됐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한국에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10개, 20개는 됐겠죠? 기업 세계, 시장의 세계는 아무나 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잠시 자연의 세계를 들여다봅시다. 지구 역사상 대멸종사건이 다섯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생물 99%가 멸종했고 1%만 생존해 지금 지구에 남았다고 합니다. 환경에 적응하고, 변이하고, 번성한 것만 살아남은 것이죠.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이런 메커니즘을 ‘자연선택’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업 생태계는 자연보다 더 잔인한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한 이유죠. 현재에 만족하면 바로 뒤에서 추격자가 등장해 삼성을 삼키고 만다는 인식이었죠. 삼성이 후지필름(디지털카메라 등장을 무시했다가 추락), 노키아(피처폰에 안주했다가 아이폰에 의해 사라짐), 블록버스터(비디오 대여에 치중하다가 넷플릭스에 밟힘)처럼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삼성은 멸종했을지 모릅니다.

삼성은 질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설탕, 밀가루, 라디오, 가전 기업에서 벗어나 최첨단 반도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로 변한 결정적 계기는 1983년 마련됐습니다. 이 회장은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던 1983년 반도체에 적극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한 투자라는 게 당시의 평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 외에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던 시대였으니까요.

이때 발휘된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는 겁니다. 기업가는 경영자와 다르답니다. 이를테면, 경영자는 돈을 벌기 위해 마차와 마부를 많이 투입하는 사람입니다. 기업가는 마차와 마부를 버리고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촉’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자는 고용된 사람이고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입니다. 마차와 마부를 얼마나 투입하면 되는지를 분석하고 실행하면 됩니다. 반면 기업가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성공과 보수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경영자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가장 싫어하지만, 기업가는 자신의 촉과 선택을 믿고 혁신에 나섭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 휴대폰을 버리고 전혀 다른 스마트폰에 도전(기업가 정신)해 무궁무진한 ‘기업가적 이윤’을 창출했습니다. 이건희 회장 역시 설탕, 밀가루,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것을 버리고 반도체와 휴대폰의 미래를 ‘촉’하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제2의 창업이었죠.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면 조지프 슘페터와 이즈리얼 커즈너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세요. 기업가와 경영자 차이를 알려면 공병호 박사가 쓴 《기업가》를 읽어보면 좋습니다. 랜들 홀콤이 쓴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도 번역돼 나와 있습니다. ‘강추’합니다.

삼성은 1993년 반도체 D램 부문에서 마침내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고용된 경영자라면 반도체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휴대폰 판매 시장에서도 수년 전 처음으로 아이폰 등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고, 이후 아이폰과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기업가만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상전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마차를 자동차로 바꾸는 그런 진화 말이죠.

삼성은 삼성만의 변화와 도약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수많은 중견, 중소기업을 키워냈습니다. 혼자서 다 못하죠. 삼성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는 거대한 네트워크가 돼 한국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삼성이 창출한 일자리는 삼성 내부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건희라는 ‘월클 레전드’를 기리는 일은 ‘국뽕’도 아니고 ‘우상화’도 아닙니다. 위대한 인물이 남긴 역사 읽기입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① 1987년과 2018년 사이에 삼성이 매출, 영업이익, 시가총액, 고용인력 면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아보자.

② 기업가와 경영자가 어떤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고 토론해보자.

③ 삼성 이건희 회장과 애플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놓고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