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다수결은 언제나 정의인가

심판 없는 길거리 농구도
합의된 규범 따라 경기 진행
엄연히 법치라는 민주주의
국정 혼란에 빠지는 경우 많아

'50%+1' 로 절대 권력이 되는
'또다른 폭력'의 위험도 상존
권력의 제한에도 관심 가져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 속에 그려진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와 플라톤의 모습. 플라톤은 민중의 지배는 위험하다며 철인왕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DB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 속에 그려진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와 플라톤의 모습. 플라톤은 민중의 지배는 위험하다며 철인왕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DB
길거리 농구를 해본 적이 있나요? 여기엔 NBA 같은 단체나 협회가 정한 경기 규칙이 없습니다. 심판도 없죠. 경기자들이 서로 알아서 합니다. 길거리 농구계에서만 합의된 규범이 있죠. 1점씩 올라간다, 득점을 올린 팀이 공을 갖는다, 심판이 없기 때문에 선수가 직접 파울을 부른다, 너무 자주 파울을 부르면 안 된다 등이죠. 우리가 최고의 정치제도라는 ‘다수결의 민주주의’는 과연 길거리 농구보다 나은 것인가요?

길거리 농구와 현대 민주주의를 맞비교한 것은 요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는 요즘 미국 학계와 출판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Against Democracy》는 대표적인 저작물이죠. 이전에 나온 대표적인 책으로는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가 있습니다.

상식 삼아 하나를 알고 넘어가죠.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는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지배를 뜻하는 크라토스(kratos)를 합친 것입니다.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곧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느냐는 권력의 원천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권력이 왕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군주정, 귀족에서 나오는 것을 귀족정, 민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민주정, 이것저것이 합쳐진 것을 혼합정이라고 합니다.

현대를 사는 여러분은 민주정(대개 민주주의라고 하지만)을 지상 최고의 정치제도로 생각합니다만, 고대 철학자와 현대 정치철학자 중에서는 민주정의 위험성을 우려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중이 지배하는 것에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교육과 지적 수준이 낮고 특별한 자질이 없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평균인(《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에서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만든 용어)’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두 사람은 민중이 아니라 철인 또는 ‘배운 자’들이 정치하기를 바랐습니다.


미국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51%의 사람이 나머지 49%의 사람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는 제도”라고 걱정했습니다. 다수결로 이기기만 하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오늘날의 병폐를 내다본 것이죠. 미국 헌법의 뼈대를 세운 알렉산더 해밀턴과 제임스 매디슨은 각각 “우리가 너무 민주주의로 치우치게 된다면 왕정이나 또 다른 형태의 독재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들은 그 삶이 짧았고 그 죽음은 폭력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히틀러 독일, 스탈린 소련, 북한이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를 소유권 문제로 다룬 학자도 있습니다. 한스헤르만 호페라는 학자입니다. 그는 우리들이 민주주의를 ‘신성한 소(sacred cow)’처럼 받들고 당연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모두가 주인인 제도인데, 모두가 주인인 것은 아무도 주인이 아닌 것과 같다”고 지적하고 “주인이 없는 것이 남용되듯 민주주의도 그렇게 남용되고 타락하고 만다”고 했죠. 민주주의는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 사례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군주정은 어떤가요? 국가의 소유권이 확실하게 군주에게 있는 제도인데, 이 군주정이 민주정보다 나은가요? 좋은 군주가 나온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로마, 영국, 조선시대를 살펴보면 훌륭한 군주를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호페의 주장은 옳은가요?

《Against Democracy》의 저자 제이슨 브레넌은 민주주의의 투표제도를 비판했습니다. 요약하면 아무나 투표권을 갖는 게 옳은가라는 겁니다. 그는 민주주의에 사는 시민을 세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호빗입니다. 정치에 아예 무관심하고 무지한 쪽입니다. 둘째 훌리건입니다. 스포츠 훌리건처럼 자기 정치 진영에 극렬한 찬성을 보내고 상대방을 폭력으로 꺾어버리려 하는 부류입니다. 오늘날 ‘~~빠’들이죠. 셋째 벌칸입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치를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부류입니다. 교통사고를 줄이고 교통이 잘 흐르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운전면허 제도를 시행하듯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려면 시민도 가려서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술주정뱅이, 도박꾼, 사기꾼, 범죄자와 건전한 시민이 동등한 한 표를 갖는 것, 학교 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만 18세 학생이 한 집안을 책임지는 아버지와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게 합리적인가, 또 정치에 관심조차 없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심한 호빗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게 맞는지를 그는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민주주의는 ‘50%+1’ 다수를 얻으면 전부를 갖는 구조입니다. 권력의 원천 못지않게 권력의 제한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권력을 나누는 삼권분립, 권력을 제한하는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려면 다수결 원칙만으로 안 된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① 길거리 농구에는 심판이 없는데도 경기가 무리 없이 잘 진행되는 데 반해 민주주의에서는 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정이 위기 상황에 놓이고 급기야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사태를 낳는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② 그리스 시대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왜 대중이 지배하는 민주정을 우려하고 반대했는지를 알아보고 비판해보자.

③ 민주주의(democracy)는 자본주의(capitalism) 사회주의(socialism)처럼 주의(ism)를 쓰지 않는데도 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지, 그 속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