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1) 백제 유민의 디아스포라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1) 백제 유민의 디아스포라

한편, 나라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고구려인들도 있었다. 이정기 일가는 청주, 서주 등 산둥반도와 장쑤성(江蘇省) 일대에 제나라를 세운 후 당나라와 전투를 벌이며 54년 동안 발전했다. 또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서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성장했다. ‘보트피플’ 백제 유민 일본으로 건너가그럼 백제 유민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660년 8월, 실정과 오만으로 저항 한 번 못한 채 항복한 의자왕과 대신들 그리고 죄없는 병사들 1만2800명은 배에 실려 당(唐)으로 끌려갔다. 의자왕과 왕자들, 일부 대신은 당나라의 벼슬을 받았으나, 복국군의 임금으로 고구려로 망명했던 부여풍은 붙잡혀 영남(廣東·廣西지방)으로 귀양가서 죽었다. 산둥지역에 버려졌던 백성들은 다시 요동으로 이주당했다. 한편 주류성 전투와 백강(백촌강)해전에서 대패한 복국군은 “어찌할 수 없도다. 백제의 이름은 이제 끊어졌고, (조상)묘소에도 갈 수가 없구나…”(《일본서기》)라고 절규하며 음력 9월 25일에 왜(倭)의 병선을 타고 거친 북서풍을 맞으며 대한해협을 건넜다. 뒤따라 백성들과 지방세력도 전라도 해안 등에서 출항해 ‘보트피플’로 떠돌다가 일본열도의 곳곳에 닿았다. 그리고 665년 2월, 400여 명이 오우미(近江) 지역에 분산된 것처럼 여러 곳에서 개척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대거 들어온 군인·정치인·지식인·기술자 등의 인적자원은 신흥 일본을 경제적·문화적으로 발전시켜 역사상 최대의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백제의 역사와 뒤섞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이 출판됐고, 유민들의 족보도 만들어졌다. 또 일본 천황가와 부계·모계로 얽혀 혈연관계는 더욱 강해졌다.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이 거주하는 지역은 ‘구다라군(百濟郡)’으로 명명됐다. 2002년 월드컵 때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칸무(桓武)천황의 어머니는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유민들의 행적과 백제계 출신이 주도한 도다이지(東大寺)나 호류지(法隆寺) 같은 대사찰, 대규모의 방어체제, ‘백제왕 신사’ 등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은 우리가 상실했던 백제역사를 복원해 준다(윤명철,《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1996). 잊혀진 고구려·백제 유민의 삶만주, 몽골은 물론이고 산둥지역, 시안과 간쑤성(甘肅省) 일대, 신장성(新疆省)의 사막,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와 파미르 고원, 티베트와 칭하이성 및 쓰촨성(四川省) 일대 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지역 그리고 일본의 에도, 규슈, 오사카와 서쪽 해안의 도시들, 심지어는 윈난성(雲南省)과 동남아시아 북부의 산족 마을에도 고구려·백제의 최후와 유민들의 깊은 한이 배어 있다(김병호,《고구려를 위하여》).
유대인은 2000여 년 동안 고난을 겪으면서도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을 유지했고, 끝내는 감동적으로 부활했다. 그런데 이 처절한 디아스포라의 존재조차 모르는 우리가 ‘민족통일’과 ‘한민족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을까? √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