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부터 일반도로는 최고 속도가 시속 50㎞, 스쿨존 등 이면도로에서는 시속 30㎞로 제한되고 있다. 이른바 ‘안전속도 5030’ 정책이다. 주행 차량의 속도를 제한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줄이고, 사고가 발생해도 사망률과 부상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어린이와 노인 등 노약자의 도로교통 안전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시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민들 반응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지키는 사람이 적어 실효성이 적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반대론의 주된 근거다. 자동차 성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도로에 안전시설도 강화되고 있는데 제한속도를 더 낮추면 시민불편이 커질 것이라는 현실론도 있다. 마구 달리다가 감시 카메라 앞에서만 감속하는 운전자가 늘면서 법규가 우습게 여겨질 것이고, 이는 곧 법치(法治)의 훼손이라는 큰 우려도 나온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국민 일상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간섭이 어디에까지 미칠 것이며, 어느 선까지 허용될 것이냐는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가 ‘과태료 장사’를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불만도 나온다. 반면 교통사고로 인한 후진국형 사망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찬성론자도 있다. ‘거북이 운행’을 요구하는 정부의 제한속도 낮추기,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 '교통약자'들 안전 강화해야 차량 속도 줄이면 사망자 감소마구 달리는 자동차는 일종의 흉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도시지역 등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 과속하는 자동차는 도로의 최대 위험요인이다. 한국인의 운전 습성이 상당히 거칠고, 자동차 중심인 경우도 적지 않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정부가 나서 속도를 제한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저속운전 등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호소한다거나 안전운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만 할 단계는 지난 것이다.자동차로 인한 사고도 과다하다. 속도제한만으로도 상당한 줄이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추니 사고 때 사망자 수가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전국 12개 도시에서 시험한 경찰쪽 실험자료를 보면, 제한속도 줄이기가 사고의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이는 반면 이동시간에는 그다지 큰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즉, 10㎞가량의 거리를 시속 60㎞와 50㎞로 각각 달렸을 때 주행 시간은 평균 2분 정도 더 걸렸다. 반면 이들 속도에서 보행자와 부딪치는 사고가 났을 때 사망 가능성은 각각 85%와 55%로 추산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도를 법을 동원해 강제로라도 낮추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운전문화는 과연 선진사회 수준과 비교할 만한가. 횡단보도만 해도 절대적으로 보행자들 보호구간인 셈인데, 정지선을 정확하게 지키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나. 골목길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차량은 널렸다. 최근 들어 스쿨존에서 강력한 단속을 하지만 규정을 지키지 않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0㎞ 미만까지에 대해 4만~13만원의 과태료 부담은 과도한 수준도 아니다.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좀 더 살펴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활용을 늘려가면서 도로 안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반대] 교통체증 유발하고 실효성도 의문 '속도'는 도시 경쟁력 좌우도시의 경쟁력은 속도전에 달렸다. 현대는 바쁜 사회다. 따라서 한국의 도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제한이다. 날로 개선되는 자동차 성능을 감안한다면 또 하나의 생활형 규제다. 대로에서 50㎞로 한번 주행해보라. 이미 그 이상의 속도에 익숙해진 도시인들 입장에서는 갑갑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가령 왕복 10차선이 넘는 서울 강남지역의 대로에서 50㎞로 주행하게 하는 것은 일부러 도로에 브레이크 장치를 달아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격이 된다.
운전 문화나 운전자의 습관 문제라면 ‘교통문화’ ‘안전 운전’ 차원에서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된 자율 캠페인 같은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지나친 규제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약속 시간에 늦어지게 하는 행정은 곤란하다. 정부가 괜히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국민 청원이 나온 것도 볼 필요가 있다.
비싼 비용을 들여 넓은 도로를 만들고 저속시대로 억지로 간다면 이것도 퇴행이다. 도로 위 자동차와 인도의 행인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잘못 됐다. 자동차는 사람을 태우지 않은 채 스스로 다니는 게 아니다. 자동차 운전자들도 언제든지 걸어 다니는 보통의 시민이다. 굳이 도로 속도를 더 제한하겠다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리 하는 것도 절충 방안이 될 것이다. 도로 여건에 따라, 또 시간대에 따라 신축성 있게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면 운전자 불편은 많이 해결된다. 자율주행차가 눈앞에 성큼 다가섰다.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면 안전운전은 저절로 크게 개선될 것이다.
수많은 도로를 모두 단속할 방법도 없다. 지키는 사람이 적은 법이라면 문제가 있다.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면 어떤 법이라도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모든 일에 일일이 정부가 나서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법의 이름으로 시민의 일상을 옥죄고 불편을 가중하는 일은 곤란하다. 스쿨존 등지에서의 과속은 이미 단속 법규도 있다. √ 생각하기 - 도로 여건·시간대 감안하는 운영의 묘 절실 생활체감형 규제 가운데 헌법보다 무서운 법규가 적지 않다. 갖가지 교통법규도 그런 사례다. 운전자 따로 있고, 보행자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성인이 운전자도 되고 보행자도 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시민 생활에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다.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개입·감시할 수 있는지 모두가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천부의 자유, 개인의 기본권이 훼손될 수 있다. 작은 것에도 원칙이 분명하고, 시민들의 상식과 보편·타당·합리성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이런 데서 선진사회와 그렇지 못한 곳이 구별된다. 운영의 묘도 중요하다. 획일적인 규제보다 도로 여건을 본다거나 시간대와 요일 등을 감안하는 것도 절충안이 될 수 있다. 모든 도로에 폐쇄회로TV(CCTV)를 최대한 설치해 감시를 극대화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예사로 경계하지 않으면 ‘파놉티콘(panopticon: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사회’가 올 수 있다. ‘빅 브러더 정부’도 작은 감시망이 쌓이고 쌓여 결과적으로 어느 날 그렇게 된다. 운전 습관 하나에서도 시민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와 양심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언제든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려 들기 마련이다. 국가의 오랜 본성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