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경희대학교 인문계열 논술문제 2번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축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시문이 길기 때문에, 문제와 해설 위주로 실어볼 테니 문제를 보고 먼저 약식으로 풀어본 이후에 답안과 대조해보도록 하세요.



[문제2] 제시문 [바]의 관점을 바탕으로, 제시문 [다], [라], [마]에 나타난 상황을 평가하시오. [1001자 이상~1100자 이하 : 배점 60점]

[다] 골렘의 도시 프라하에서 활동하던 소설가 카렐 차페크는 1920년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로봇’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로봇은 체코어로 ‘강제 노동’, ‘노예’를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왔다. 이 희곡에서 로봇들은 로섬의 공장에서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고안됐는데,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정복한다. (중략)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기계로 다시 한 번 수천, 수만 배 더 편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중략) 하지만 인간은 두렵다. 우리보다 더 강하고, 똑똑하고, 현명할 미래의 기계를 나약한 인간이 통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기계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까? 인간은 기계를 지배할 자격이 있을까?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기계는 지능을 가지는 순간 인간을 공격하고 멸종시키려고 달려든다. 운 좋아봐야 컴퓨터에 연결돼 인간이 여전히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꿈을 꾸며 살게 한다. 그래서일까? 세계적 로봇공학자 모라베츠는 주장한다.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듯,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기계들이 선심을 베푼다면 우리는 애완동물 정도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라] 고용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한때 사람만 담당할 수 있었으나 이제 새로운 기술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 지나치게 많다고 우려한다. (중략) 사람들이 과거에 맡았던 작업 중 일부를 앞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깨달았다는 데서 이들 비관주의자는 옳다. 하지만 수행해야 할 작업이 새로 생길 것이고, 새로 생긴 작업에서 인간이 여전히 우위를 지닐 수도 있으며, 정말 그렇다면 사람이 할 일이 새로 생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데서 이들 비관주의자는 틀렸다.

이번에는 낙관주의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들은 비관주의자들이 ‘노동 총량의 오류’에 근거를 두고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노동 총량의 오류’란, 합당한 급여가 지급되는 일자리 개수는 고정되어 있고 주어진 노동 ‘총량’을 사람과 기계가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다. 낙관주의자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기술의 생산성이 높다면 산출량은 늘어날 것이다. 그로 인해 해야 할 일 역시 늘어날 것이며, 따라서 사람이 할 작업도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노동 ‘총량’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합당한 급여가 지급되는 일자리 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마] 매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거인의 정원에 가서 놀곤 했다. 그것은 부드러운 풀밭이 있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풀밭 여기저기 아름다운 꽃들이 별 떨기처럼 피어 있었다. (중략) “여기 있으니 정말 행복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치곤 했다.

어느 날 거인이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 “여기서 뭣들 하는 거냐” / 그는 아주 퉁명스럽게 고함을 질렀고, 아이들은 달아나 버렸다. / “내 정원은 내 정원이야. 누구나 다 아는 일 아닌가? 나 말고는 아무도 여기서 놀 수 없게 하겠어.” / 그래서 그는 정원 둘레에 높은 담장을 세웠고, 경고문을 써 붙였다.

‘무단 침입 엄금!’

그는 오직 저만 아는 거인이었다. / 가엾은 아이들은 이제 놀 곳이 없었다. 길거리에서도 놀아 보았지만, 길은 먼지투성이인 데다가 딱딱한 돌멩이들이 많아서 별로 좋지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높다란 담장 주위를 서성이면서 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 “저 안에서는 정말 행복했는데!” (중략) 봄이 왔다. 온 나라에 작은 꽃들이 피어나고 작은 새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거인의 정원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아이들이 없었으므로, 새들은 노래하러 오지 않았고 나무들은 꽃피우기를 잊어버렸다.

[바] 인공지능이 발달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는 역사적 기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같은 존재가 되어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인 인간을 지배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슈퍼 비즈니스 기업들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기회로 만들고자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사물인터넷은 이성주의, 합리주의를 대표하는 이론적, 디지털 휴머니즘을 상징하지만 이 사물들과 그들의 인공지능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인간들은 존엄성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평가하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구도를 묘사하는 글들을 봤다. 그 내용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미래의 도전이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고 협업해야 할 현실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공지능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승리이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글의 승리다.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답안

(바)는 미래비관론에 반론을 제기하며,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 협업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바)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우려하는 암울한 미래관을 부정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의성과 합리성을 뒷받침하여 인간만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알파고가 그렇듯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발전을 위한 도구로 쓰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평가할 수 있다.

(다)는 기계의 발전에 따라 인간과 기계의 본질적 차이가 없어지면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로봇은 인간을 위한 노동의 도구로 고안되었지만, 더 편하고 효율적인 기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한계까지 넘어설 수 있다. 역설적으로 기계에 복종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의 관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창의성과 같은 고유의 가치를 망각하고, 기계와 인간을 대결구도로서만 이해한 것이다. 인간은 합리성을 갖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해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암울한 미래관으로 기술개발을 제한한다면, 인간의 편리와 발전도 이룰 수 없다.

(라)는 기술발전에 따른 고용에 대해 양 입장을 소개한다. 비관주의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직업과 고용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며 기술발전이 노동총량을 증대시켜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의 관점에서 비관주의는 기술의 도구성과 미래의 발전을 놓친 주장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새로운 도전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낙관주의는 (사)와 일치한다. 노동량의 증대는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는 사례이다.

(마)는 정원이라는 장소를 둘러싼 거인과 아이들 간의 관계를 우화적으로 제시하며 거대한 산업사회에서 인간가치가 소멸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거인은 거대한 산업사회나 기계화된 인공지능을 뜻하며, 접근금지 팻말은 이러한 산업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소외시킴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공존과 배려를 상징하는데, 고도화된 산업사회와 기계화는 사랑과 배려가 소멸된 삭막한 공동체를 만든다. 이는 (바)의 관점과 상반된다. (마)는 인간과 기계화된 사회의 거대함을 암울한 구도로 그리지만, 거인이 상징하는 미래에도 여전히 공존과 협업을 꿈꿀 수 있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 포인트

경희대학교 논술은 인문계열과 사회계열로 나뉘며, 인문계열에서는 전통적으로 두 개의 문제를 출제합니다. 특히 다중 평가를 전개하는 1000~1200자 내외의 장문형 글쓰기에서는 요약과 평가능력이 합격 답안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