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난해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한 해 동안 사망자 수가 새로 태어난 출생아 수보다 많아지면서 인구가 자연 감소한 것이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2020년 12월 31일 현재 주민등록인구는 5182만9023명. 전년보다 2만838명(0.04%) 줄었다. 예고된 것이 앞당겨진 것이기는 하지만, 전쟁이나 초대형 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구 감소는 이례적 현상이다. 1962년 주민등록제도가 도입된 이래 인구통계상 감소가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인구 감소는 오래전부터 예고됐고, 정부도 그동안 저출산 대응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으나 효과가 없다. 재정 투입으로는 효과가 없자 대안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정년 퇴직자 가운데서도 경험과 지식이 많은 고령자들을 경제활동 인력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외국인에 대한 문호도 더 적극적으로 열자는 주장이 나온 지 한참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정부 예산 투입 확대와 인구청 등 정부조직 신설 등 재정 정책으로 풀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돈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일까.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찬성]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재정 투입…일자리·주거 대책에 더 집중해야재정 투입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더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것 외에 젊은 세대의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안이 무엇인가. 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비혼(非婚)·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넣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재정에서 지원한 돈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한 통계도 없다. 2003년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약 200조원이 투입됐다는 자료도 있고,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누계로 225조원이 투입됐다는 집계도 있다. 이처럼 통계부터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저출산 대응 예산이라며 투입한 예산이나 대응 정책의 실상이 가짓수만 많았을 뿐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직접 관련이 없는 정부 지출까지 저출산 대책 재원에 마냥 포함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것도 일종의 ‘면피 행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며 “저출산 예산도 이렇게 많이 집행했다”고 변명하기 위한 통계로 부풀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2020년 12월)에 발표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도 추가된 것은 영아수당 신설, 육아휴직자 확대 정도다. 단편적, 지엽적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저출산의 구조적 문제를 보면 결혼이나 출산, 육아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욜로(YOLO: 한 번뿐인 인생 이 순간을 즐기자)족’ ‘딩크(DINK: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족’ 증가 등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자리가 적은 데다 불안정하고 도시의 경우 주거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큰 문제다. 이런 문제에 저출산 예산 집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자면 재정투입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과감하게 집행해야 실질적 효과도 나올 수 있다. [반대] 재정투입 일변도 대책 한계 달해…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탈피해야약 20년에 걸친 저출산 대책의 근본 틀을 바꿔야 할 때다. 특히 재정투입 일변도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뿐 효과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됐다. 출산장려 비용, 영유아 보육지원 예산만 해도 적다고 보기 어렵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제도도 있다. 주택 문제가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신혼부부에게 민간에서 분양하는 식의 고급주택을 제공해줄 만큼 재정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일부의 극단적 주장처럼 출산 때마다 1억원씩 현금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독립적 개인이 2세를 출산하는 데 그런 큰돈을 줄 수도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부실한 재정은 저출산 외에도 쓰일 곳이 많다. 국방, 과학·기술 개발, 교육, 각종 사회인프라(SOC) 구축, 보건·의료, 일반 행정 등 고유한 지출이 많은 데다 ‘코로나 충격’으로 국가채무를 확대해가면서 재정 지원을 더 늘려야 할 곳도 적지 않다. 저출산에만 재정 지원을 늘릴 수 없는 현실적 이유다.

재정에 기대지 않고도 규제개혁 등으로 어려운 경제를 살려낼 수 있듯이, 저출산 대책도 인식의 전환으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청년 세대에 대한 일자리 확대만 해도 ‘세금으로 만드는 관제(官製) 일자리’가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내고, 시장에서 창출되는 ‘세금 내는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게 하는 게 관건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구 감소 문제는 단순히 저출산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연수생을 더 받아들이고 외국인에 대한 문호 개방을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는 등 개방적인 다문화 정책을 펼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차제에 ‘민족’ 개념을 탈피하는 다원화한 사회여야 ‘개방 교역국’인 우리 경제의 성장 기조도 유지할 수 있다. 미혼모·한쪽 부모 가정도 불편함이 없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 생각하기 - 경제활동인구 유지가 중요…복지·연금까지 미리 대응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대한민국 첫 인구 감소…'재정 투입 해법' 계속해야 하나
좀 과한 표현이지만, ‘인구절벽은 곧 경제절벽’이라는 진단도 있다. 고령인구가 증가하는 와중의 생산인구 감소는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경고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경제활동인구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게 당장의 관건이다. 정년퇴직 제도를 아예 없애 경륜이 있는 퇴직자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가정의 여성인력을 경제활동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국경이 낮아지는 시대 내국인·외국인 구별 자체를 없애 ‘국내 거주인’으로 통합하는 등 해외 인력을 더 많이 수용하는 것도 대안이다. 일자리와 주택 문제가 저출산의 큰 장애요인이라 해도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 해결될 방안을 모색해나가야 지속가능해진다. 저출산에 따른 연금과 복지 제도도 잘 살피면서 재설계해야 할 것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인구 3000만도 초만원’이라는 구호 아래 산아제한 정책을 폈던 게 오래지 않았던 점을 돌아보면 감정적인 과잉대응은 오히려 지양할 과제이기도 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