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비롯한 사업장에서 산업재해성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책임을 크게 강화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각종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기업 대표,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주주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그 법이다. 문제는 경영책임자에게 ‘2년 이상의 징역형’까지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과잉처벌이라는 우려와 반대가 나오면서 경영계, 경제단체 등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관되게 밀어붙여왔다. 당초에는 시·도지사, 시장·군수 같은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처벌 대상에 들었으나 이들 선거직 공무원은 빠지면서 형평성 논란도 빚어졌다. 산업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명분에서 법안이 나왔지만 ‘사전 예방’보다는 사고 발생 후 ‘사후 분풀이’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기업 대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기업 등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줄어들까. 그런 이유에서 기업 대표에게까지 징역형의 형사처벌을 가할 수 있는 것인가.
[시사이슈 찬반토론] 사업장서 안전사고 나면 기업주에게 징역형 부과한다는데…
[찬성] 끊이지 않는 산업현장 안전사고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책 나와야각종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을 강화하는 여러 규제를 겹겹이 마련해뒀으나 인명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무리가 따르더라도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018년 12월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김용균 씨가 화력발전소 내 안전사고로 숨진 일이 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곧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화된 산안법 개정안(김용균법)도 이른바 ‘위험 작업의 외주화’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다. 건설현장에선 그 사건 이후 오히려 사고가 더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안전사고는 국제적으로도 발생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다. 산업현장에서 안전 미비 등으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위험에 과잉 노출돼 있는 근로자는 원청업체가 아니라 하청·협력업체 소속인 경우가 많고, 급여가 상대적으로 많으면서 고용안정성도 높은 정규직이 아니라 고용안정성까지 떨어지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안전 문제에서조차 고용·노동시장 약자들에게 위험이 집중되면서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이 다 미치지 못하고 제도적으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산업현장 약자들의 안전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존 산업안전법을 강화하고 행정단속을 더 엄격히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현행 법체제로는 개선에 한계가 있다. 10만여 명의 시민이 법 제정을 청원한 사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기업주와 경영인에게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해달라고 호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 위헌 논란 나오는 과잉입법...산업재해 줄이는 효과 있을지 의문‘세계에서 제일 강한 산업재해처벌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여당의 중대재해법은 위헌 소지가 다분한 과잉 입법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다양한 형태의 산업현장 사고에 대해 구체적 기준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영진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이는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과 어긋난다. 기업 대표에게 포괄적 의무를 부여한 채 사고 발생이라는 ‘결과’를 두고 형벌로 책임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이런 과잉 처벌 때문에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반대의견을 낸 것이다. 법무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내 유관부처까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벌만 강화해서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라면 법안 논의 초기에 들어 있던 부처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은 왜 처벌 대상에서 빼버렸나. 공직자 등의 부정청탁을 막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던 ‘김영란법’이 마지막 단계에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스스로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과 같은 꼼수 아닌가.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는 명분도 있고, 한국 사회가 적극 노력해나가야 할 방향이 맞다. 하지만 현장마다 관리자를 두고 안전책임자를 겹겹으로 둬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사고다. 관리감독을 강화해도 사고 자체는 막을 수 없는 게 인간사회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작업현장의 여건이 천차만별이고, 원인이 같은 사고도 없다. 원청과 하청, 발주처와 협력사업자 간 업무 분담이나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은 사고도 날 수 있고, 근로자 본인의 과실로 빚어진 사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사고를 사업주가 책임지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켜지기 어려울뿐더러 이렇게 해서 사고가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법이 강행되면 기업 경영을 쉽게 맡으려 들지 않고, 새로 기업을 일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 생각하기 - 과도한 규제의 부작용까지 봐야…관행과 문화 개선도 필요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되 어떤 방식이 실효성 높을지 생각해야 한다. 자꾸 새로운 법을 만들면서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가능하면 기존의 법 적용을 엄격하고 슬기롭게 하면서 필요할 경우 보완책을 다각도로 강구하는 것이 효과 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다. 사형제도를 강화한다고 중대 범죄가 줄어든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살인 사건이 잦아진다고 주방용 칼 소지를 제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사업장서 안전사고 나면 기업주에게 징역형 부과한다는데…
이런 강력한 법이 시행될 때의 파장과 부정적 영향도 미리 지혜롭게 살필 필요가 있다. 중대 사고가 집중 발생하는 중소기업이 먼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사고 발생에 따른 소송 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사회적 혼란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업하려는 창업자들이 확 줄어들 것이며, 외국인도 한국 투자를 꺼릴 것이다.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그만큼 크다. 피할 수 없는 안전사회의 길, 엄벌 일변도가 아니라 산업현장의 다양한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때로는 법보다 관행과 문화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지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