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 유리천장
기업 승진·정부 고위직 인사 등에서
여성이 받는 보이지 않는 차별 의미
국내 상장사 임원 중 여성은 4.5%
여성 임원 '0명'인 회사가 더 많아
양성평등채용·여성임원할당제 등
유리천장 깨는 정책적 시도 나서야
내년 1월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에 재닛 옐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명됐다. 옐런이 상원 인준 절차를 밟아 취임하면 미국 재무부 231년 역사상 첫 여성 장관이 된다. 국가정보국(DNI) 국장에는 에이브릴 헤인스 전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이 내정됐다.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감독하는 DNI 수장을 여성이 맡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기업 승진·정부 고위직 인사 등에서
여성이 받는 보이지 않는 차별 의미
국내 상장사 임원 중 여성은 4.5%
여성 임원 '0명'인 회사가 더 많아
양성평등채용·여성임원할당제 등
유리천장 깨는 정책적 시도 나서야
바이든의 러닝 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역시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에 오른다. 백인과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화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 직원의 52%가 여성이며 고위직 여성은 전체의 53%”라고 보도했다. ‘유리천장 타파’ 나선 바이든 정부옐런과 헤인스, 해리스 등의 사례처럼 여성이 고위직에 오를 때면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깼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유리천장은 여성들이 승진에서 받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뜻한다. 겉보기에는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투명하지만 실제로는 막혀 있다는 얘기다.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1978년 미국 경영 컨설턴트인 메릴린 로덴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의 많은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 인사 규정에는 여성이 불이익을 받을 만한 명시적 조항이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여성을 리더십이 부족한 존재로 여겼고, 승진에서 백인 남성을 우대했다는 게 로덴이 내린 결론이었다. 몇 년 뒤인 1986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유리천장’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리면서 이 표현이 널리 알려졌다.
여성가족부가 국내 2148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임원(3만797명) 중 여성은 4.5%(1395명)였다. 이들 기업의 66.5%(1428개)는 여성 임원이 아예 한 명도 없었다. 또 여성이 임원이 되는 것은 남성보다 7배 이상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남성 근로자(119만137명) 대비 남성 임원(2만9402명) 비중은 2.47%였다. 여성 근로자(40만8336명) 대비 여성 임원(1395명)의 비율은 0.34%로 훨씬 낮았다. 성공의 문, 여성에게 더 좁은가주요 국가마다 유리천장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여성의 공직 진출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1996년 신규 채용하는 공무원의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으로 뽑는 ‘여성채용목표제’를 도입했다. 군(軍) 가산점 폐지 이후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2003년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이름을 바꿔 남녀 중 어느 한쪽이 전체 합격자의 7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공기업과 상장사를 대상으로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했다. 여성 임원 비중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정부 지원금 축소, 벌금 부과 등 강력한 불이익을 주는 제도다. 한국도 2022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가 사내·사외이사를 특정 성(性)으로만 채우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유리천장을 깨는 긍정적 시도가 될 것이란 옹호론에 힘을 받아 법이 통과됐다.
유리천장은 여성뿐만 아니라 유색 인종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의미가 넓어졌다. 해리스는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최초의 유색 인종 부통령이라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리스는 당선 수락연설 무대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색 슈트를 입고 등장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된 첫 번째 여성일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