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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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주로 거부권 휘두르는 '마법의 주식'
일본제철이 미국 철강산업을 상징하는 기업인 US스틸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일본제철은 지난 18일 US스틸 인수 비용 141억 달러(약 19조4000억원)를 납입하고 모든 인수합병(M&A) 절차를 마쳤다고 발표했다. 뉴욕증시 상장사이던 US스틸은 일본제철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이날 상장폐지됐다. 일본제철은 경영상 중요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 한 주를 미국 정부에 발행했다고 밝혔다.US스틸 인수한 일본제철, 美 정부에 황금주 발행황금주란 단 한 주만 보유하고 있어도 주주총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말한다. 미국 정부는 이 황금주를 활용해 US스틸의 본사 이전, 사명 변경, 공장 가동 중지, 투자 계획 철회 등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황금주는 1984년 영국이 브리티시텔레콤(BT)을 매각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정부 소유 통신사였던 BT를 민영화한 뒤에도 최소한의 공익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이후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황금주를 채택하는 국가가 줄을 이었다. 다만 주주 간 평등권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럽연합재판소가 2002년 황금주 폐지를 권고한 이후 ‘본토’인 유럽에서는 사라지는 추세이기도 하다.일본제철이 황금주를 쥐여준 것은 US스틸이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까웠다. US스틸은 1901년 피츠버그에서 설립돼 제2차 세계대전까지 큰 호황을 누렸고, 한때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하던 기업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일본, 중국, 독일 등의 철강 기업에 밀려 사세가 기울었다. 조강 생산량 기준 일본제철은 세계 4위, US스틸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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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풀려면 돈 내라"…먹통 된 예스24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인 예스24가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을 받아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일 오전 4시부터 홈페이지와 앱 모두 먹통이 되면서 도서 주문, 전자책, 티켓 예매 등이 막혔다. 닷새째인 13일에야 일부 서비스가 재개되기 시작했다. 예스24는 이 기간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고 출판·공연계도 큰 혼란을 겪었다. 데이터 ‘인질’로 잡고 대가 요구랜섬웨어는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를 합친 말로, 컴퓨터 시스템이나 데이터를 암호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해킹 방식이다. 해커들은 암호화 알고리즘을 이용해 파일을 ‘잠금 상태’로 만든다. 비밀번호를 이것저것 무작위로 입력해 보는 방식으로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수백조 년이 걸린다고 한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랜섬웨어 공격의 복구 방법은 다른 곳에 백업해 둔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해커에게 돈을 주고 복구 키를 구입하는 두 가지밖에 없다”며 “해커도 이걸 잘 알기 때문에 백업 데이터까지 공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예스24에서는 설정 파일, 스크립트 파일 등 서버에 접근하는 일종의 길목에 암호가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자체 조사 결과 개인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지만 2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들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랜섬웨어라는 수법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7년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에서 작동한 ‘워너크라이(WannaCry)’ 사건이다. 당시 워너크라이는 세계 150여개 나라에서 최소 30만대 이상의 컴퓨터 시스템에 피해를 줬다. 이후에는 ‘서비스형 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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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면 증시는 달린다?
새 정부 출범 직후 한국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코스피지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4일부터 이틀 동안 110포인트 넘게 급등하며 단숨에 2600대에서 2800대가 됐다.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 11일에는 2900선을 돌파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주주 권익 강화와 내수 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며 전형적인 ‘허니문 랠리(honeymoon rally)’를 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왜 허니문 랠리라고 할까자산 시장이 약세에서 강세로 전환하는 현상을 ‘랠리’라고 한다. 자동차 경주, 테니스, 배구 등에서 벌어지는 난타전을 뜻하는 스포츠 용어인데 경제 용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6~7월께 나타나는 여름철 상승장은 ‘서머 랠리’, 12월 말에 관찰되는 강세장은 ‘산타 랠리’라고 부른다. 하락 국면이던 증시가 반짝 상승하면 인디언 서머에 빗대 ‘인디언 랠리’라고 한다.허니문 랠리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선거 과정에서 고조된 정치·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경제를 살릴 여러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란 시장의 예상이 주가 강세를 견인하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이든 취임 초반에는 지지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를 신혼부부에 비유해 ‘허니문 기간’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유진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22년까지 아홉 차례 대선에서 선거일 한 달 후 주가가 오른 경우는 여섯 번이었다. 코스피지수 상승 폭이 가장 컸던 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87년 13대 대선으로, 선거 후에 한 달간 주가가 24.1% 급등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뽑힌 2017년 19대(3.1%), 윤석열 전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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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마저 하향…미국 '트리플A'서 밀려났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지난달 16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끌어내렸다. 1917년 최고 등급인 Aaa를 부여한 후 108년 만의 강등이다. 무디스는 재작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해 하향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이번에 실제로 등급을 낮추면서 등급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5경원’ 美 국가부채에 경고장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의 외채 상환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통한다.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등 대외 부문 건전성이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거시경제 여건, 재정 건전성, 안보 위험, 금융과 기업의 경쟁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국가신용등급은 민간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기는데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같은 나라여도 세 회사가 매긴 등급이 다를 수 있다. 앞서 S&P가 2011년, 피치가 2023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린 바 있다. 이로써 미국은 3대 신용평가회사 모두로부터 최고 등급 지위를 ‘박탈’당하게 됐다.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핵심 원인으로 나랏빚을 지목했다. Aaa 등급을 받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미국의 정부부채 비율, 재정지출에서 이자 지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이 나라 국가부채는 36조2200억 달러(약 5경원)에 이른다. 20년 새 다섯 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GDP)의 1.23배다. 미국 정부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2001년 이후 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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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에 두 배로…5000만원 → 1억원
오는 9월부터 예금보호한도가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어난다. 1금융권인 은행뿐 아니라 2금융권인 저축은행, 신협,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에서도 똑같이 1억원으로 조정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예금보호한도 관련 6개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16일 입법 예고했다. 금융위 의결,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의 후속 절차를 거쳐 9월 1일 시행한다. 금융사 문 닫아도 예금 1억원까진 ‘안심’금융의 생명은 ‘신뢰’다. 만약 금융회사가 영업정지, 파산 등을 맞아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나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국내에서는 예금자보호법을 근거로 일정 금액까지 지급을 보장하고 있다. ‘안심하고 돈을 맡기라’는 뜻이다. 해외 주요 선진국도 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예금보호한도는 2001년 5000만원으로 정해진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하지만 경제 규모가 꾸준히 커지는 데도 예금보호한도는 너무 오랫동안 묶여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예금보호한도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한국은 2배 수준으로 미국(2.9배)보다 크게 낮다. 이 점을 반영해 24년 만에 한도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예금보호에는 ‘보험’의 원리가 활용된다. 정부가 설립한 예금보험공사가 평소 금융회사들로부터 꾸준히 보험료(예금보험료)를 거둬 기금(예금보험기금)을 쌓아뒀다가, 사고가 터지면 이 기금을 활용해 예금자에게 대신 돈(예금보험금)을 지급한다. 예금보험료는 예금 잔액의 일정 비율만큼 납부하도록 돼 있다. 현재 은행은 0.08%, 금융투자·보험회사는 0.15%, 저축은행은 0.40% 등으로 매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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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돈' 154조…초고령사회의 슬픈 단면
90대 노인 A씨는 국가유공자 연금으로 모은 4875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집 안 러닝머신 속에 보관했다. 어느 날 그의 딸이 러닝머신을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렸다. A씨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가족들은 A씨가 숨긴 돈뭉치의 존재를 몰랐던 탓이다. 그래도 A씨 가족은 운이 좋았다. 부품을 분해하다가 현금 다발을 발견한 고물상이 경찰에 신고한 덕에 이 돈은 온전히 주인을 되찾았다. 지난해 4월 경기 안산에서 있었던 일이다.치매 어르신 자산, GDP 6.4% 달해고령 치매 환자의 자산을 뜻하는 이른바 ‘치매 머니’가 154조원에 이른다는 정부의 첫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A씨 사례에서 보듯, 인지 기능이 약해진 치매 환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는 지난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대 건강금융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한 ‘고령 치매 환자 자산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2.4%인 치매 어르신이 국내총생산(GDP)의 6.4%에 맞먹는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은 2002년 이후 치매 진단을 받아 건강보험을 청구한 환자를 추려낸 다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확보한 소득·재산 자료를 활용해 이들의 총자산 규모를 분석했다.조사단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 치매 환자는 2023년 기준 124만398명이고, 이 중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61.6%인 76만4689명이었다. 이들이 가진 자산을 모두 더하면 153조5416억원으로 파악됐다. 치매 머니에는 부동산(113조7959억원)이 가장 큰 비중(71.4%)을 차지했으며 1인당 평균이 2억원 정도였다. 저출산위는 “인구 대비 치매 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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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짓고도 못 판 아파트, 전국에 2만5000채
‘선착순 파격가’, ‘할인 분양’….대구 도심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현수막 문구다. 대구에는 미분양 주택이 9177가구가 있다. 특히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3252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서울 강남은 아파트값이 오른다지만 여기선 딴 세상 얘기”라며 “가격이 떨어져도 거래가 끊겨 사무실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준공 후 미분양 1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미분양이란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팔리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다. 미분양 물량은 여러 이유로 생길 수 있다. 청약 신청에 오류가 있어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당첨되고 돈을 내지 못해 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있다. 부동산시장이 활황이면 이런 미분양은 금방 소진되지만 시장이 침체됐을 때는 잘 해소되지 않고 쌓인다. 통상 정부는 전국 미분양 주택이 6만 가구를 넘어서면 위험 수위로 본다.분양을 마치고 집을 다 지었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준공 후 미분양’이 된다. 악성 미분양이 쌓이면 아파트 사업을 추진한 건설사에는 타격이 크다. 분양 수익이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미분양 물량을 직접 보유한 채 중과세 부담까지 떠안느라 자금난이 가중된다. 건설사들이 준공 후 미분양을 악성 미분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이른다. 건설투자는 한번 확장기에 들어서면 오랫동안 든든하게 경제성장률을 떠받치고 고용 창출 효과도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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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서 동업자로…포스코·현대제철 '오월동주'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철강과 2차전지 분야에서 폭넓은 협력을 약속하는 업무협약(MOU)을 지난달 21일 맺었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미국의 25%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짓기로 했는데, 포스코가 여기에 투자자로 참여하고 철강 제품 일부를 가져다 쓸 계획이다. 국내 철강 1·2위 라이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관계가 ‘프레너미(frienemy)’로 재정립되고 있다는 평가다. “美 관세 파고 함께 넘자” 손잡은 1·2위프레너미란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말로,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기업 간 관계를 가리킨다. 이 용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인 테리 앱터가 <베스트 프렌즈>라는 책에서 처음 썼다. 친구가 잘되길 응원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의 이중적 심리를 표현하면서다.삼성전자와 애플은 프레너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쪽에선 ‘갤럭시’와 ‘아이폰’으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다른 한쪽에선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어주고 공급받는 사이여서다.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1970년대부터 철강 공급사와 고객사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현대차가 현대제철을 통해 자동차 강판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자 포스코는 강판 원료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번 합작은 총 58억 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하는 미국 제철소 투자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현대제철과 북미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싶어 하던 포스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최근 수년 동안 한국 철강업계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건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