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반도체 패권 쟁탈
컴퓨터·스마트폰의 진화도
자율주행차·증강현실도
반도체 발전이 따라줬기 때문
'더 작고' '더 빠르게' 계속
미·중 국가차원서 개발 지원
양자반도체 분야도 경쟁 치열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우리가 숙고를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문명은 발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말 컴퓨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마우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지만 사용한다. 한 번의 클릭만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한다.컴퓨터·스마트폰의 진화도
자율주행차·증강현실도
반도체 발전이 따라줬기 때문
'더 작고' '더 빠르게' 계속
미·중 국가차원서 개발 지원
양자반도체 분야도 경쟁 치열
이런 문명의 중심에 반도체와 컴퓨터는 존재한다. 반도체와 컴퓨터 시장이 이렇게 커질 줄 그 누구도 몰랐다. 1943년 토머스 왓슨이라는 IBM 회장은 “나는 컴퓨터 5대만 팔아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비관했다. 세계 컴퓨터 시장은 모두 합쳐봐야 5대쯤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I think there is a world market for maybe five computers). 왓슨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의 속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2020년 지금 인류는 적어도 수십억 대의 컴퓨터를 사용 중이다. 정보처리 속도는 빛보다 빠르지만 크기는 겨우 책 만하다. 왓슨이 살았던 때 컴퓨터 크기가 집채 만했으니, 왓슨의 예측을 ‘바보의 예측’이라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요즘 우리는 각 방에 수십, 수백 기가(giga)급 컴퓨터를 두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컴퓨터 성능이다. 컴퓨터 성능은 곧 정보처리 속도에 달렸다. 정보처리 속도는 바로 반도체 기술력이 좌우한다. 과거에 컴퓨터에 사용됐던 커다란 진공관은 곧 트랜지스터 기술로 바뀌었다. 트랜지스터 안에 소자를 심는 기술은 ‘무어의 법칙’(2년마다 2배로 반도체 집적도가 늘어난다)대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뇌를 닮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그 사이에 10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다. ‘1000억 개 × 100조 개’가 조합해내는 정보처리 통로는 반도체로 보면 소자에 해당한다. 인간들은 자신의 뇌를 이용해 자신과 거의 유사한 반도체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반도체가 뇌의 구조를 따라 가려 하지만 아직도 넘지 못하는 벽이 존재한다. 뇌는 매우 조밀하고 복잡한 ‘항공망형’ 네트워크를 가졌음에도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고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 전기적 간섭이 거의 없다. 그러나 반도체는 소자 크기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서로 너무 가까워 열이 발생하고, 전기적 간섭이 일어나고, 정보처리에 오류를 낸다. 더 작게, 더 많은 소자를 심어야 하는 한계가 발생하는 이유다. D램이든, 낸드플래시 메모리이든(낸드플래시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으로,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져도 한 번 저장된 정보는 지워지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주로 저장장치에 쓰인다) 마찬가지다. 비록 기술적 한계에 세계가 직면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각종 한계를 돌파해내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삼성은 작년에 세계 최초로 ‘6세대 256Gb(기가비트) 3비트 V낸드플래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용 PC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기술 전쟁은 국가 간 핵 전쟁보다 더 격렬하게 펼쳐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중이다. 지난 9월 미국 연방의회는 2021년도 예산에 25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항목을 넣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작년까지 5000억위안(86조원)이 넘는 돈을 반도체에 쏟아부었다. 15%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인다는 ‘반도체 굴기(起)’다.
이미 우리 눈앞에 와있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증강현실(AR) 같은 4차 산업혁명에도 반도체는 필수다. 고도의 연산기능을 수행하는 지능형 반도체와 신경망처럼 움직이는 인지기능 반도체는 필수다. 지능형 반도체를 지배하는 나라가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이유다. 인공지능 사회에선 시스템반도체가 지능형반도체로 대체될 게 확실하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의 30%,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가 70%를 차지한다. 산업계는 팹리스(fab-less)로 불리는 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고객사가 설계한 것을 전문적으로 위탁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기업, 삼성전자처럼 반도체 설계와 제조, 판매를 다 하는 종합반도체 기업(IDM)으로 나뉜다.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우위를 가졌다. 중국이 이 시장을 뚫기는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칩(chip) 구조가 간단하고 상대적으로 설계가 어렵지 않은 메모리 반도체에 중국이 도전해오는 중이다. 한국과 겹치는 영역이다.
최근 반도체 이상의 반도체를 만들려는 국가 간 경쟁이 양자반도체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양자반도체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양자기술에선 반도체가 가진 칩의 회로선폭, 천문학적인 디자인 및 제작비용이라는 한계는 돌파된다. 정보처리 속도는 지금의 반도체 기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과학저술가 메트 리들리는 “우리는 지금대로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하는 일에 변화를 가해왔다”고 말했다. 그 변화가 필요한 곳이 바로 반도체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① 진공관식과 트랜지스터식 정보처리장치의 차이를 알아보자.
② 한국, 미국, 중국 간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조사해보자.
③ 양자컴퓨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인재의 중요성을 토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