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4, 5면
“미국에 애플이 있다면 한국엔 삼성이 있다.”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서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애플이 개발한 윈도우형 OS(컴퓨터 운영체제)와 스마트폰 아이폰은 세계적 표준이 됐다. 하지만 한국 기업 삼성은 도전과 혁신으로 수많은 1등 제품을 만들어내며 세계 ICT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지난 8월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애플(12%)과 격차를 벌리며 세계 1위를 고수했다. 반도체, OLED 등 디스플레이, 리튬이온전지 등 배터리 등도 삼성이 만든 세계 1위 제품이다. 삼성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를 도모하는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있다.
이런 초일류 기업을 일군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의 타계 소식에 세계는 경영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
이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1987년 삼성 회장직에 올랐다. 섬유·화학·무역·금융이 주력이고 전자제품은 TV 정도 제조하던 삼성을 ICT 위주로 재편하면서 1987년 10조원을 밑돌던 그룹의 매출 규모를 2018년 387조원으로 키웠다. 창업주를 보좌하던 그가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시작한 반도체사업은 오늘날 삼성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 비중을 담당하도록 하는 초석이 됐다.
그는 1993년 ‘신경영’을 내세우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말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1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인재경영’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자인경영도 이끌었다.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새로운 사업과 방향을 제시했고 “시장·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라”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임직원들의 타성을 질타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뤄냈고, 창업주의 호를 따 1990년 제정한 호암상은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한국의 과학·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94년 설립한 삼성사회봉사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 실천한 모범사례로 꼽힌다.
물론 이 회장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은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실패했고 시계 오디오 태양전지 사업 등도 쓴맛을 봤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며 초일류 기업을 키워낸 그의 기업가 정신은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의 영면을 기원한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