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조차 주기 버거운
편의점 주인 등 영세업자들
알바·직원 줄일 수밖에 없어

저소득 취약층 근로자부터
'괜찮은' 일자리에서 내몰려

정확한 지표·계산식 만들어
최저임금 산정 다툼 줄여야
최저임금 오르는 건 좋지만…'쪼개기 알바' 양산 부작용
내년 최저시급은 8720원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은 내내 논란의 대상이었다. 시작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꼽으면서 현 정부 출범 첫해 16.4%라는 기록적인 인상률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5%(130원) 올린 8720원으로 결정하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급브레이크가 밟혔다.

최저임금은 취약 근로자의 생계 보장을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최저임금을 가능한 한 많이 올리는 게 근로자는 유리하다. 하지만 인상된 최저임금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려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해야 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지만 많은 취약 근로자는 소득 향상보다는 일자리를 잃는 등 부작용에 고통받았다. 올 들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들 취약 근로자가 일자리를 지키기 더 어려워졌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률로 결정한 배경이다. 근로자 400만 명이 최저임금 영향최저임금이 오르면 우선 상당수 근로자가 혜택을 본다. 월급이 늘어난 근로자가 소비를 늘리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하기 힘들어지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작용도 매우 크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5% 인상되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최소 93만 명에서 최대 408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른바 ‘최저임금 영향률’이다. 현재 받고 있는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적어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근로자 비율을 말한다.

내년 최저임금 영향률은 역대 최저 인상률에 연동해 올해보다 소폭 내려갔다. 올해 최저임금 영향률은 20.7%였다. 최저임금이 2년 동안 무려 30% 가까이 올랐던 2019년에는 25%에 달했다. 근로자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근로자 수가 대략 20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500만 명이 ‘최저임금 인상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고용시장 충격에 취약한 근로자가 많아진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임금이 오른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법정 주휴수당도 오른다. 주휴수당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가 미리 약속한 근무일에 개근했을 경우 1주일에 하루치 임금을 더 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익을 많이 남기지 못하는 편의점 등 사업주는 하루 8시간씩 고용하던 소수의 아르바이트 청년을 내보내고 주 15시간 이내 일하는 다수의 아르바이트 청년을 새로 뽑는다. 주휴수당을 지급할 수 없을 정도이거나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청년들은 ‘괜찮은 알바’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최저임금 올라도 못 받는 근로자들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하는 심각한 부작용은 또 있다. 이른바 ‘최저임금 미만율’ 문제다. 현재 우리 법은 법정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면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전체 근로자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저임금 미만율’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은 16.5%에 달했다. 우리나라 근로자 1000명 중 165명은 최저임금보다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일했다는 얘기다. 특히 2016년 13.5%에서 이듬해 13.3%로 낮아진 최저임금 미만율은 현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 시작한 2018년 15.5%, 2019년 16.5%로 상승했다. 정확한 지표와 산식 개발해야상황이 이런데도 최저임금이 계속해서 오르자 사각지대 해소 대책 마련과 함께 아예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경제 상황에 대한 정밀한 예측을 전제로 결정돼야 할 최저임금이 정부의 비공식적인 주문이나 노사 간의 ‘샅바싸움’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 제출됐다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이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담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와 공익으로 이뤄진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개정 법안의 골자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하면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공인된 수치와 산식으로 인상률 구간을 정하고, 노사가 이 범위 내에서 인상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다수 전문가는 예상하고 있다.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NIE 포인트①최저임금으로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자는 주장과 오히려 사용자들이 채용을 꺼려 실업이 증가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주장, 두 주장이 내세우는 근거는 무엇일까.

②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 혜택을 보는 근로자가 있는가 하면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아 최저임금제 보호를 못 받는 근로자도 늘어나는데, 최저임금은 계속 올려야 할까.

③전문가들이 경제 여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가능한 범위를 설정한 뒤 노사가 그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인상률을 결정한다면 과거에 비해 합의가 쉽게 이뤄질까.